부국과 빈국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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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진실' 출간
10세기 초 중국의 기술은 서양의 기술과 대등했다. 18세기 후반에도 두 지역은 산업구조와 농업기술, 1인당 소득 등 유사점이 아주 많았다.

오늘날 중국이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고는 있지만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유럽국가들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이미 중국보다 먼저 경제성장을 이뤘다.

비슷한 조건의 두 지역에서 경제발전의 차이가 발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술의 차이, 아니면 자본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이는 '시장의 진실'(에코리브르 펴냄)에서 "왜 일부 국가만 부유하고 나머지 국가는 가난한가"를 물으며 부국과 빈국의 경제발전 차이를 가져온 조건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기술이나 자본, 자원, 교육 등의 차이로는 오늘날 국가들의 경제발전 격차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어디서나 기술이 개발될 수 있고 자본과 기술이 국가간에 자유로이 흘러다니는 오늘날을 생각해 볼 때 만약 이런 요소들이 경제발전의 핵심 요소라면 기술을 이전받거나 자본의 지원을 받은 나라들은 모두 금방 부자국가들을 따라잡아 그들처럼 잘 살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부국들의 시장제도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토머스 제퍼슨이나 조지 워싱턴이 정치 제도의 구조를 만든 것처럼 시장 제도의 구조는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발명해 낸 것이 아니라 기술.문화.정치.사회 조직의 공진화(共進化. 여러가지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해 가는 것)가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이렇듯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다듬어지고 진화해 온 제도 없이는 빈국은 언제까지나 가난할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생산성은 산업부문에서 자본과 노동만의 산물이 아닌 제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아 탄자니아의 모로고로에 세워진 신발공장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기술과 자본의 이전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 공장에는 현대식 설비와 신발제조기술이 이전됐고 유럽으로 수출까지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공장은 용량의 5% 이상 가동된 적이 없었고 한 켤레의 신발도 수출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장비는 유지보수가 부실해 주기적으로 고장이 났고 부속품도 모자랐다. 근로자와 관리자들은 공장에서 물건을 훔쳐갔다. 서구의 공장처럼 알루미늄 재질의 벽으로 지어진 공장은 외부로 연결되는 환기장치가 없어 탄자니아의 기후에는 맞지 않았다.

저자는 모로고로의 신발공장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생산은 단순히 자본과 노동, 기술의 곱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만약 부국에서 생산적으로 사용된 기술과 자본, 장비들이 부국의 사회, 문화, 정치 제도와 한 조가 되어 빈국들에 동시에 이전될 수만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그 동안 빈국들과 저개발국에 대한 개발기관의 태도를 비판한다. 부국과 빈국들 간의 차이는 각각의 경제적 제도의 질(質) 차이로 발생하는데 개발기관들은 40년간 자신들의 지원책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에 실망한 후에야 이 점을 인식했고 채무국 정부에 개혁을 요구하게 됐다는 것.

뒤늦게 개발기관들이 내린 처방 또한 미약했다. 러시아에 제공된 것은 미국식 제도가 아니라 미국식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개발기관들은 소유권의 보장과 최소한의 정부의 경제적 개입, 규제완화 등 시장제도를 단순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간과했고 자신들이 내린 처방이 이행된다면 성장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시장에 관한 진실은 이보다는 더 복잡하다"며 "부국들은 시민사회와 정치적, 경제적 제도들이 수세기를 거쳐 이룬 공진화의 산물이고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공진화는 빈국에 이식할 수 없다"(439~440쪽)고 결론짓는다. 원제 'Culture and prosperity'. 홍기훈 옮김. 517쪽. 2만3천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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