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에서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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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우포늪에 오면 1억 4천년만 전 태고의 시·공간을 만날 수 있다. 여름의 우포늪은 온통 개구리밥, 마름, 생이가래 등 수생식물들로 덮여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늪가엔 수양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늪은 꿈을 꾸는 듯 평화롭다. 여름의 늪은 왕성한 생명의 숨결로 차 있다.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으로 하늘을 볼 수 없는 도시인에게 우포늪은 태고의 공간과 숨결과 맥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벌(우포), 나무벌(목포), 모래벌(사지포), 쪽지벌 등 4개 늪을 총칭하는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의 230만㎡에 걸쳐 분포하는 국내 가장 큰 내륙습지이다. 여름 방학 기간이라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늪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잠자리들이 공중으로 떠다니고, 미루나무 위에서 매미는 원시 공간을 짜르르 울리고 있다. 쇠물닭들이 수면을 첨벙거리며 물결을 튕긴다.

낙동강 유역 창녕, 함안지역은 늪지지역이 굉장히 넓었으나 대부분 매립되어 늪의 90%가 소실되었다. 그런데도 우포늪이 이나마 남아 있는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우포늪이 시멘트 공간으로 변하지 않고, 대단위 공업단지나 아파트단지가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어딜 가서 우포늪 같은 태고의 공간을 찾으며, 생명의 보고(寶庫)를 볼 것인가.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사박물관이다.

금년 1월에 세계적인 자연사박물관인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에 가 본 적이 있다. 공룡연구소까지 갖춘 이 자연사박물관엔 과학적인 시설과 자연계와 인류 역사를 테마로 한 1억 2천400만 점의 소장품이 있다. 선사시대 각종 동·식물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의 자연사 유물들이 전시돼 관람객을 압도하지만,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자연사박물관은 이미 ‘자연’과 ‘생명’을 상실했다. 거대한 야수에서부터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상실한 채 표본과 박제품이 되어 진열돼 있을 뿐이다. 관람객들은 동물들의 주검을 보면서 그들이 살았던 숲과 늪지를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연사박물관을 메운 관람객 중에 6세의 소녀가 어머니 품속에서 울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소녀는 “이곳에 있는 동물들이 모두 죽어 있어요.”라며 울먹이고 있었다. 자연사박물관엔 살아있는 게 없다. 거대한 생명체의 무덤, 아니 주검의 박제품을 보여주는 삭막한 공간에 불과할 뿐이다.

우포늪은 얼마나 신비한 자연과 생명의 궁전인가. 1억년 생명의 유전자와 숨결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이다. 람사르협약(습지보전 국제협약)에 등록된 세계적인 습지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삵, 고니, 가창오리, 가시연, 순채 등 1천여 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우포늪에선 멸종 위기의 세계적인 희귀종인 가시연꽃이 피고 있다. 둥근 잎 하나의 직경이 2m나 되는 보랏빛 꽃은 신비를 머금고 있다. 어찌 동물의 박제품을 진열한 자연사박물관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경남에선 우포늪에 따오기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46호로 지정돼 있고, 1970년 이전엔 흔한 겨울철새였으나 최근에 거의 멸종이 된 따오기를 중국에서 가져와 정착시키려는 프로그램이다. 오래 전에 지리산에 곰을 방목한 일이 있지만, 먼저 동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부터 복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오는 10월엔 창원에서 람사르총회가 열린다. 람사르협약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조약’을 말한다. 람사르협약은 ‘철새 서식지 보호’라는 것만을 협약하자는 게 아니다. 종(種) 다양성의 보존과 인류의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습지를 보존하고 현명하게 이용하자는 데 있다. 환경올림픽이라 불리는 람사르총회를 앞두고 우리는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앞으로의 대책에 진지한 검토와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인간만의 편리성 추구에 앞서 모든 생명체와 공생할 수 있는 지혜와 방법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갈수록 물 부족과 사막화 현상이 심해가는 지구환경과 생태계를 보면서 습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자각할 때다.<정목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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