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자(惺惺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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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대표적 유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은 엄격한 수양과 강인한 기개로 유명하다.

55세 때 현감에 제수되자 명종 임금에게 올린 사직상소는 그의 품성을 잘 보여준다.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다하나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어린 나이로 선왕의 한 아들일 뿐이니, 천재는 백만 가지로 닥치고 인심은 억만 가지로 갈라지는데 이를 어떻게 당해내고 어찌 수습하시렵니까.”

당시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문정대비의 부패상과 임금의 무능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음이다.

그는 학문적 라이벌이었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에게도 편지했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빗자루 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말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합니다.”

후학들이 실천은 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풍토를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남명 선생은 벼슬길을 마다했지만 조정의 기강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림에 끊임없이 조정을 비판하고 위민(爲民) 정치를 요구했다.

그 바탕에는 ‘경의검(敬義劍)’과 ‘성성자(惺惺子)’가 있었다.

늘 품에 지닌 ‘경의검’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을 새겼다.

‘안으로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일을 결단하는 것은 의’라는 의미다.

또 옷고름에는 두 개의 작은 쇠방울을 달고 다니며 ‘성성자’라고 명명했다.

‘성(惺)’은 깨달음이니 쇠방울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를 깨닫고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서운 선비정신에 오싹할 정도다.

▲오늘(1일)부터 18대 첫 정기국회가 100일간의 회기에 들어간다.

10년 만에 여야가 뒤바뀌고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정기국회여서인지 어느 때보다 격한 전장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여야는 임기개시도 못한 채 80여 일 동안 정치공방으로 지샜다.

이로 인해 지각 원구성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한다.

첫 국정감사부터 ‘시간부족, 전문성 부족, 자료부족’이란 ‘3무(無)’ 국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결산과 추경예산 심사, 인사 청문회 등도 부실해질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소신 없이 당리당략에 휘둘린 때문이다.

오늘 날 우리정치의 현주소가 이렇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남명 선생의 쇠방울이 아닐까 싶다.<김범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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