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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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작가·명지대 교수>



지난 해, 멀고 먼 터키에서 독자가 찾아온 일이 있었다. 베이한 도안즈. 터키의 중부도시 카르세르에 있는 에르지에스 대학 한국어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번역원이 주최한 한국문학 독후감대회에서 일등상을 받고 그 부상으로 번역원이 초청해 방한의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이 터키 처녀가 선택한 텍스트는 나의 초기 작품 ‘우리들의 장례식’.



터키에서 찾아 온 독자



단편 ‘우리들의 장례식’을 쓴 것은 1976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시절 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서 일주일에 서른 시간 넘게 수업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밤에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퇴근하고 대학원에 갈 때는 매번 파김치처럼 지쳐 있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면 늘 졸기 바빴다. 그날도 졸다가 제때 내리지를 못하고 그만 대학 앞을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졸다 깨고 보니, 아주 낯선 곳이었다. 나를 내려놓고 버스가 부르릉 하며 사라지고 나자 갑자기 적막해졌고, 그 적막 속으로 개천을 끼고 끝없이 펼쳐진 낮은 지붕과 판잣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초겨울이라서 개천은 벌써 얼어있었고, 루핑으로 된 판잣집 지붕들 위로 고압선이 도도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때마침 히끗히끗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이 장위동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대학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 장위동 달동네 안길로 들어섰다. 고압선 전신주들이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어둑신한 길을 따라 오십여 미터를 들어갔을까. 판잣집 추녀 밑에 싸구려 나무관 하나가 기대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띄었는데, 나무관의 아랫도리는 가린 것이 없어 골목길에서 그대로 진눈개비를 맞고 있었다.

삐죽이 열린 좁은 재래식 부엌에서 늙수구레한 부부가 쭈그려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노모가 죽었다고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라서 조문객은 물론 이웃사람 하나도 와있지 않았다. “눈을 맞는데, 왜 관을 방에 들여놓지 않나요?” 나는 그만 묻지 말아야할 것을 묻고 말았다. 남자가 말없이 방문을 열고 어둡고 비좁은 방안을 보여주었다. 노모의 시신이 아랫목에 뉘어져 있었다. 놀랍게도, 방이 너무 작아서 기성품 나무관을 도저히 방 안에 들여놓을 수 없었다는 걸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다음날 대학원 수업에 가지 않았다. 하루 여섯 시간이 넘는 수업에 지칠 대로 지쳤으나 나는 퇴근해서 곧장 내 셋방에 돌아와 앉아 밤새워 소설을 썼다. 70년대의 혹독한 가난과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난 이틀 동안 잠 한숨 자지 않고 ‘우리들의 장례식’을 썼다. 노모가 죽었으나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한밤중 달동네 복판을 가르고 지나가는 개천 바닥에 노모를 남몰래 묻는다는 이야기였다.

“이 작품을 쓸 땐 당신처럼 먼 데에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독자를 만날 날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어요. 소설 속 이야기는 당시로선 단순한 픽션이 아니었거든요”. 나는 터키에서 온 처녀에게 말했다.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쓴 소설



놀랍게도 그녀는 내가 쓴 우리나라의 ‘70년대 풍경’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죽어간 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나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지금의 젊은 제자들보다 멀고 먼 터키의 작은 도시에서 날아온 처녀와 말이 더 잘 통한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내 젊은 제자들과 내 ‘새깽이’들이 다 잊어버린, 이해하지 못하는, 그렇지만 불과 30여년밖에 안되는 그 역사를 터키의 처녀로부터 비로소 이해받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당신은 지금 어떤가?



세상은 이제 남의 가난이나 불행에 대해선 아무도 분노하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그렇지만 때로 나는 묻는다. ‘발전’한 것이 맞기는 맞는가. 고통 받았던 과거를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꿈꾸는 것은 어쩌면 ‘꿈’이 아니라 천박한 ‘욕망’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허겁지겁 욕망을 쫓아 아우성치며 달려가다가도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애당초 출발했던 그 곳으로 돌아가 가난이 오히려 선(善)이라고 말했던 세월을 한번 쯤 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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