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크기로 줄어든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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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브뤼크네르 소설 '남편이 작아졌다'
166㎝의 남편 레옹과 180㎝ 아내 솔랑주는 14㎝의 키 차이쯤이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첫 아이가 태어난 후 레옹의 키가 거짓말처럼 조금씩 줄어들면서 이 행복한 부부 사이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프랑스 르노도상과 메디시상을 수상한 유명 소설가이자 철학가, 경제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소설 '남편이 작아졌다'(베가북스 펴냄)는 스위프트와 볼테르, 발자크 등 여러 작가들이 다뤄온 신체 변형 이야기를 근간으로 한다.

점점 줄어드는 레옹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를 통해 이 시대 남편과 아버지의 위상을 보여주는 씁쓸한 우화다.

조금씩 작아지던 레옹은 꼭 39㎝가 줄어든 후 멈춘다. 이때만 해도 솔랑주는 레옹의 축소를 "머지않아 치유될 악성 기관지염이나 바이러스쯤"으로 여기고 변함없이 레옹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나 치유는커녕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레옹은 또다시 39㎝가 줄어든다. 먼저보다 그 속도도 빨라졌다.

아이가 한 명 태어날 때마다 39㎝씩 줄어든다는 패턴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솔랑주가 쌍둥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고, 쌍둥이가 태어나자마자 레옹은 또다시 78㎝가 줄어 몽당연필만한 크기가 된다.

"당신은 세대교체를, 그러니까 어린이들을 위해서 어른들이 사라지는 현상을 퀵 모션으로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중략) 장차 도래한 부성의 변모를 당신이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미래에는 모든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을 수태시키고는 이내 사라질 지도 몰라요."(76쪽)
소설은 10㎝의 초미니 남편이자 아버지인 레옹이 점차 무심해지는 아내와 그를 공격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재치있게 그려낸다.

레옹의 축소는 물론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물리적인 의미를 배제한다면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서연 옮김. 198쪽. 9천800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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