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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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졌기 때문일까? 간혹 필자가 마치 만물박사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알지도 못하는 일에 나서서 아는 척하기도 싫고, 아는 척하다가 들켜서 망신당하느니 차라리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속 편하다.

필자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고 따라서 잘 알지도 못한다. 어쩌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안다고 해도 필자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한들 누구 하나 들어줄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단지 필자는 나에게 주어진 가르치는 일과 연구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 뿐이다. 사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할 때면 학생들은 필자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어쩌다 괜찮은 책이라도 한 권 쓰고 나면 사람들이
축하의 말을 건네준다.

필자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이 좋고, 필자의 책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 좋을 뿐이지, 필자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 사람들을 상대하여 그들을 욕할 필요도 없고 나를 보아달라고 아부할 필요도 없다.

상대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면, 그가 대학의 총장이나 교육부장관이라고 하더라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하물며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필자의 직업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야 내가 그 지위에 있지도 않으면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자기 방식대로 감을 놓든 배를 놓든 알아서 놓고 책임도 그가 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말이 없다.

이 땅의 최고지도자가 토론을 좋아해서일까? 그 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말이 많고 하나같이 전문가이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들 주장만 할 뿐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혼란이 있다면 누군가는 이러한 혼란을 조정하여야 하고 또 책임도 져야 한다.
토론을 주도하는 사람은 소신이 있어야 하며, 자기가 틀렸을 때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기의 잘못을 흔쾌히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곤란함에 부딪히면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인가요?”라는 따위의 말로 상대를 제압하려 들어선 안 된다. 진정으로 토론을 잘하는 사람은 설령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무한한 인내력으로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며 결코 화를 내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지도자의 자리는 힘들고 외로운 자리이다. 아무렇게나 결정하고 말이 많으면 다시 뒤집으며, 곤란하면 남의 핑계를 댄다면 나같이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요사이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와 CS(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로 말들이 많지만 사실 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그 분야의 전문가인 정책입안자들이 알아서 할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많은 단체들이 자기 주장을 펴고 있고, 장관은 하루가 멀다하고 말을 바꾸어 갈수록 혼란만 더해 가고 있다. 그러나 검찰파동 때에는 평검사들까지 만나며 적극적이던 대통령께서는 묵묵부답이더니 교육개혁위원회라는 또 다른 교육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교사는 만날 가치도 없으며, 내가 잘나 대통령이 되었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일까? 혹 교사는 명령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인 것은 아닐까?

풀은 뿌리를 뽑아버려야 없앨 수 있다. 그저 줄기만 자르면 다시 무성하게 자라고 만다. 잘못되었다면 단지 겉으로 드러난 제도만을 고치거나, 사람들에게 그럴 듯하게 들리는 미사여구로 현혹하여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그 제도를 시행하는 사람의 생각을 고쳐야 한다. 생각을 고치는 것은 교육이다. 교사와 교육을 천시하면 결국 배가 산으로 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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