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신고와 ‘몰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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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란 말이 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는 뜻이다.
사람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이런 기본적인 마음씨조차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일부에서는 극단적으로 ‘파렴치한’ 또는 철로 만든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과 같다고 하여 ‘철면피’라 부르기도 한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운영 중인 119상황실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긴급한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주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민의 안전을 담당해야 할 119상황실에 황당한 신고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백번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해도 보통의 시민들의 눈에 비친 이 같은 행태는 아무래도 ‘염치없는 신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제주소방서가 공개한 일례는 이렇다.
‘목욕탕에 거미가 살고 있다. 아이들이 거미가 무섭다며 목욕탕 출입을 하지 못하고 있어 조속히 목욕탕에 거미를 잡아 달라’,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열려진 아파트 창문을 닫아 달라’….
이 뿐만이 아니다.

‘애완견이 침대와 바닥 사이에 끼였다’, ‘주인 없는 고양이가 건물 사이에 끼였다’ 등 통상의 가치관과 상식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하는 신고들이 한두 건이 아니다.

제주소방서가 올 들어 긴급구조를 요청해 출동한 건수는 655건에 이르고 있다. 119는 교통사고 및 화재 현장에서 287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그런데 이들 출동 건수 가운데 ‘목욕탕 거미 제거’ 신고 등 굳이 119에 기대지 않고서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염치없는 신고’도 벌써 90건에 이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체 신고건수 가운데 14%가 이처럼 사소한 문제로 119가 출동한 셈이다.
이와 함께 올해 119의 전체 출동건수 가운데 49%인 319건이 오인신고로 집계돼 119의 행정력 낭비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는 119의 이처럼 ‘공허한 출동’이 119의 행정력 낭비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정의 지역을 ‘관할구역’으로 지정, 운영되고 있는 현행 119 운영체계상 동일지역에서 연속된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당연히 순간적으로 업무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인접지역 119가 출동해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이에 따라 사소한 신고로 119 출동이 이뤄졌을 경우 또 한편에서는 절대적으로 119의 도움이 필요한 데도 도움의 손길이 지체될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다.

불행과 재난은 언제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자신의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긴급 후송돼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경우 만에 하나 지척에 있어야 할 119 구조대가 ‘공허한 출동’으로 업무에 공백이 생기고 또 출동이 지체됐다면 과연 그 책임을 누구에게 탓해야 하는가.

1분 1초가 길게만 느껴지며 119구조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절박한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신고나 잘못된 구조신고는 정작 도움이 절실한 시민들이 구조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은 항상 상존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위한 시민들의 자율적 노력과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들이 결집될 때 비로소 공존공영의 사회발전이 기대될 수 있다.

119 신고에 ‘염치’가 필요한 것은 백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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