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들은 미 정보기관이 영변 근교의 대기 샘플을 분석한 결과, 방사성 물질인 크립톤 85를 검출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재처리를 이미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 미국 정보기관들은 1994년 제네바합의 이전에 핵무기 1~2개를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고, 이를 이용해 조악한 수준이지만 핵무기 1~2개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해 왔고, 제네바합의로 동결된 영변의 5㎿ 원자로를 가동하여 8000여 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한다면 핵무기 5~6개를 생산할 수 있는 30㎏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왔다.
북한은 지난 1월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이후 수차례에 걸쳐 미국에 대해 북한이 이미 재처리를 완료했다거나 심지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통보한 바 있으나, 미국은 이에 대해 폐연료봉의 재처리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공갈용’으로 치부해 온 것도 사실이다.
즉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 시인이 북.미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형적인 공갈게임’으로 간주하고, 이에 심각하게 대처하지 않아 왔다.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레드라인을 의도적으로 설정하거나 최후통첩(ultimatum)을 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었을 경우 한국과 일본의 반대로 말미암아 미국이 경제적 제재나 선제 공격 등 확실한 대응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합의하에 ‘다자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시도하고 있고, 북한은 핵 문제는 북.미 간 문제임을 강조하고 양자간 해결을 주장하고 있어 핵 문제를 둘러싸고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이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시작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북한 핵무기를 용납하지 않으며 핵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지만, 북한이 계속 핵 보유를 강행할 경우에 어떤 수단으로 저지할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정책이 없는 듯하다.
북한은 9월에 ‘남북평화체육축전’을 치르기로 합의하는 등 남.북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면서 한반도에 평화 무드를 조성하는 한편 한반도의 핵 위기가 자칫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 정책에 기인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북한 핵 위기의 근원은 미국의 강경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어기고 1994년 이후 계속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시도해 왔기 때문이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우선은 다자간 대화의 틀내에서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오로지 대화를 통한 해결만을 주장할 때 과연 북한이 그 대화에 선뜻 응할지는 의문이다.
특히 북한의 핵 보유 시도가 협상전술이 아니라 안정 보장을 위한 궁극적인 목표일 경우에는 대화를 통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대화만을 통한 해결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식량과 의료품 등 인도적 지원 이외의 대북경제협력을 점차 중단하는 등 봉쇄전략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의 행동을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협상과 봉쇄를 병행해 실시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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