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허리와 르호보암의 새끼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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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B.C. 962년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솔로몬은 그의 재위 40년 동안에 인류 사상 최고의 부와 명예와 영화를 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솔로몬의 명재판은 오늘도 곧잘 인용된다. 그의 지혜와 부와 영화가 극에 달했다는 소문을 확인할 겸 스바의 여왕이 친선방문을 했었다는 이야기며, 정략적으로 주변국들의 왕녀와 결혼했던 일들이 성서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국가 간접자본의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남북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건설, 지중해와 인도양을 통한 해양무역을 주도하기 위한 무역항 개발, 므깃도(아마겟돈)에서 해마다 세계 최신예 무기박람회 개최, 유사시를 대비하여 요새화된 견고한 도성의 건설, 힘에 부치는 국토개발, 영화와 쾌락의 압축인 화려한 축제외교 등은 국민생활을 핍절하게 하였고, 무거운 세금과 강제노역동원 등으로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하였다.

솔로몬왕의 말기에 이러한 허풍과 사치, 부패, 신앙의 타락은 가속되었다. 그의 총명과 지혜는 쾌락과 명성과 욕심의 늪에 빠져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의 40년 통치가 마감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B.C. 922년(41세)에 즉위하였다.

그가 왕이 되자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봇물터지듯 쏟아졌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가원로들은 감세정책과 강제노역동원 중지를 요청하였다. 반면 왕과 같은 또래의 젊은 집권층은 개혁의 초점을 인적 청산에 두었다. 그리고는 구체적 대안없는 추상적 구호를 외치며 갈팡질팡하였다. 르호보암왕은 원로들의 충언을 반개혁적 수구로 단정하고, 이제는 자기와 코드가 맞는 젊은 신하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였다.

이에 젊은 신하들은 “임금님께서는 이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더 무거운 멍에를 지우겠다’라고 말씀하십시오.”

르호보암왕은 코드가 맞는 신세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결국 르호보암왕은 국가경영 능력이 형편 없는데다 통치경륜이 전무하고 경박스러운, 그리고 지극히 사시적이고 편향적인 아마추어 신세대 정치인들과 함께 통치행위를 함으로써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였고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시키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열등의식으로 극도로 오만해진 르호보암왕은 자기와 정신 수준이 비슷한 비정상적인 신진들과 함께 국가 경영을 막가파식으로 정치게임화하면서 언어의 유희나 일삼고, 정신분열적 오만으로 덤벙거리면서 심각한 비극을 연출하였다.

정작 르호보암왕은 최우선의 개혁의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며, 증오와 원한을 품은 저항성과 사시적 편향성을 지닌 비정상적인 측근의 정치인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고, 소신없는 변덕을 마치 변화인 양 착각하면서 민족의 비극을 가속시키고,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시키고 말았다.

오늘 우리 앞에 전개되는 이 나라의 국가경영 행태를 보면서 “2900여 년 전의 르호보암의 통치행위보다야 훨씬 낫지!”라고 강변하면서 힘을 다하여 외치느라고 하는데도 모기소리처럼 안으로 기어들고, 오히려 르호보암과 그의 아마추어 신진 정치꾼들이 오늘 이 나라의 역사현장에서 부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은 과민한 일부 국민들의 정신착오적 현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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