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 ‘여고괴담3: 여우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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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고 무대로 펼쳐지는 학원 공포물

"하나, 둘, 셋, 넷…스물여덟, 스물아홉! 여우야 여우야, 내 소원을 들어줘…."

영화예고 뒷마당에서 기숙사로 향하는 계단은 '여우계단'으로 불린다. 간절한 소원을 품고 28개의 계단을 오르면 맨 마지막에 29번째 계단이 나타나고, 여우에게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여우계단'(제작 씨네2000)은 교복 차림의 소녀가 한밤중에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오른 뒤 "여우야, 여우야, 영원히 함께 있게 해줘"라고 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무대는 예술여자고등학교. 감수성과 재능이 번득이는 학생들이 즐비한 만큼 욕망의 대결도 불꽃을 튀기고 좌절의 그늘도 훨씬 짙다.

발레리나 출신 엄마를 둔 소희는 얼굴과 몸매도 빼어나고 무용 솜씨도 발군이다. 그와 무용반 단짝인 진성은 피나는 노력을 거듭하지만 소희에게 밀려 2등을 벗어나지 못한다.

엄마의 잔소리를 지겨워 하던 소희는 어느날 진성의 기숙사 방으로 찾아와 하룻밤을 보낸 뒤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며 잠든 진성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 스무살 되면 함께 살자. 오페라극장에서 나는 지젤, 너는 알브레히트가 되어 멋지게 춤을 추는 거야."

잠이 깨어 이 말을 듣고 있던 진성. 선망과 질투심을 억누르며 마음속으로 외친다. "내가 왜 알브레히트야, 지젤이지."(지젤과 알브레히트는 고티에 작 발레 '지젤'의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서울발레콩쿠르에 나갈 학교 대표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붙자 남몰래 여우계단을 올라 콩쿠르에 나가게 해달라고 빈다. 친구들로부터 놀림당하던 미술반 뚱보 혜주가 여우계단에서 소원을 빈 뒤 놀랄 만큼 살이 빠졌다는 고백을 들었기 때문이다.

'여고괴담'은 미국의 '스크림', 일본의 '링'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한국적 공포영화 시리즈의 대명사. 김규리, 최강희, 박진희, 박예진, 김민선, 공효진 등 새내기 스타의 산실이면서 "내가 아직도 친구로 보이니?" 등 많은 유행어를 낳았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이 전통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희로 등장한 박한별은 어리광스런 말투가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맑은 마스크와 밝은 인상으로 스타의 자질을 과시했다. 진성 역의 송지효와 혜주 역의 조안은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활발한 활약을 예감케 한다.

벌써부터 여학교마다 계단을 오르며 여우에게 비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는 소문도 들리며 "난 너만 있으면 돼"라거나 "난 네가 정말 싫어, 날 너무 비참하게 해"라는 대사도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무대를 예고로 옮긴 것은 친구간의 경쟁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으로 여겨진다(한 학교에서 서울대는 여러 명 갈 수 있으나 서울발레콩쿠르에는 한 명밖에 못나간다). 무용 연습실 풍경이나 조소실의 찰흙 흉상 등도 화면을 다채롭게 만드는 데 한몫 한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만다. 줄거리가 너무 단선적이고 복수의 방법도 지나치게 뻔하다. 공포를 자아내려면 관객이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 등장해야 하는데 '순진한' 윤재연 감독은 관객에게 수법을 모두 읽히고 말았다. TV 영화프로그램 등을 통해 미리 패를 많이 보여준 탓도 크다.

제1편은 영화적 재미 말고도 성적지상주의나 교사의 성희롱과 체벌을 폭로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2편은 동성 친구간의 사랑과 배신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전면으로 끌어냈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번 3편이 아쉬운 까닭도 바로 '또 다른 그 무엇'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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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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