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음루(蟬吟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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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사는 곳이 비록 초가삼간이라도 당호(堂號)를 붙이길 좋아했다. ‘당호’는 집 이름이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는 자신의 집을 ‘지지헌(止止軒)’이라 짓고는 그 뜻풀이를 이렇게 썼다. ‘지지’란 멈춰야 할 곳을 알아 멈추는 것을 말한다.

멈춰야 할 곳도 아닌데도 멈추게 되면 그 멈춤은 멈출 곳에 멈춘 것이 아니다. (夫所謂止止者, 能知其所止而止者也./ 非其所止而止, 其止也非止止也.)

‘止’자를 연달아 사용하는 이 문장은 한문을 배울 때 예문으로 많이 쓴다.

그리고 시공을 넘어 오늘날에도 인용되는 처세의 경구다.

▲고산 윤선도의 집안인 해남 윤씨의 종택의 ‘당호’는 ‘녹우당(綠雨堂)’이다.

성호 이익(李瀷)의 형 이서(李曙)가 붙였다는 이 집 이름이다. 바람이 솔솔 불면 집 뒤 비자나무 숲의 잎이 흔들리며 비가 오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여름 날 한 낮, 이 집 사랑채에 앉아서 바람에 스치는 ‘푸른 비(綠雨)’ 소리를 듣노라면 무더위는 천리 밖으로 달아날 듯싶다.

이 녹우당 마을 뒤 덕음산의 비자림은 약 500년 됐다고 한다. 뒷산에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윤씨 시조의 유언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이 숲을 잘 간수해 왔다는 이야기도 상큼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녹우당은 그 이름처럼 온통 푸르다.

고산의 의절이 그렇게 푸르렀는데, 녹우당을 둘러싼 대나무 숲이 또 그렇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우리나라 국회를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고 했다.

국회에서 목청 높이는 꼴을 보면 그 말이 꼭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최근 해외에 있는 한인회 전·현직 간부들에게 모국을 바라볼 때 가장 부끄러운 것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난장판 국회’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목청 큰 놈이 이긴다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시내 도심의 ‘매미 소리(蟬吟·선음)’는 시골보다 2~3배는 더 시끄럽다.

수컷 매미의 제짝 찾는 이 신호가 길거리의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악을 쓰고 울어댄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인데 우리 국회 의사당 큰 건물을 ‘선음루(蟬吟樓)’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

<부영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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