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판배와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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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의 전통배는 없었다. 희미한 말 몇 마디가 그 모든 것이었다. 그 이름까지도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멀어져 간 후였다. 그래서 뗏목인 테우가 제주배의 전부인 양 부각되었다. 뗏목은 근해 작업용 선박이라 육지와 연결할 수 있는 항해는 어렵다. 제주에는 1000년 전에 이미 육지와 왕래할 수 있는 선박들이 있었다. 선후대들은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 살면서 제주 전통배가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운행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제주의 해양사가 꽉 막히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제주대 박물관 고광민 학예사 한 사람의 끝없는 조사로 제주의 동쪽 끝 성산읍 시흥리 바닷가의 목선공 김천년 할아버지(당시 72세)가 덕판배를 만들었었다는 사실이 소개되었다. 1996년 KBS제주방송총국과 제주대 박물관이 덕판배 복원계획을 세우고 할아버지 손에 의해 덕판배가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그 해 가을 시험 운행을 마치고 일본 항해 탐사에 나섰다. 보호선인 삼다호의 보호를 받으며 항해가 이뤄졌다.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돛 끝이 안 보이는 높은 파도 속에서 덕판배는 무사히 항해하여 일본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제주민들이 끝없이 육지와 왕래하며 교류하였다는 확실한 입증과 더불어 실제적인 제주민의 항해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몇 천년의 제주배가 복원되었다는 글씨도 마르기 전이다. 며칠 전, 덕판배를 만들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육지로 올려진 덕판배는 별 보존책 없이 표류하다 지금은 국립제주박물관 야외에 놓여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다에서도 표류하지 않던 배가 육지에서 표류하는 기이한 현상을 접하며, 할아버지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글들을 보았다. 문화재의 지정 여부보다는 문화재를 잘못 인식하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 문제다.

할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었다. 그 후 덕판배를 만드는 집에서 자랐고 70여 년을 배와 더불어 살았다. 평생 바닷가의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배만 만들던 할아버지는 호리호리하면서 건강하고 정신이 맑은 분이셨다. 평상시 어부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던 할아버지는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덕판배와 더불어 제주 해양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지어 논 덕판배를 보며 그 누구가 어쩌니 저쩌니 떠들어도 건강한 미소로 답을 하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한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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