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이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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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에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85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세상을 떠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우리 국민은 2명의 위대했던 민주주의 지도자이자 전직 대통령을 연거푸 잃게 됐다.

얼마 전 노 전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오열하던 그의 모습이 국민들의 뇌리에 남은 마지막 장면이 됐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자, 대한민국 민주화, 남북의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그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그 자체였다.

전라남도의 조그만 섬 하의도 출신인 그는 몇 번의 낙선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그 직후 발생한 5.16 군사쿠테타로 의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첫 정치적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1963년 다시 국회에 입성한 뒤 야당 대변인을 거쳐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석패하면서 그의 굴곡진 정치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의 철권통치에 저항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상징이었고 소외된 민중의 지도자로 우뚝 서는 영광된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신시대 일본에 납치돼 수장될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건지기도 했고 5.18민주항쟁의 배후로 지목돼 전두환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우리 정치사에 그 만큼 많은 시련과 죽음의 위기를 겪은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그는 유신독재에 전두환 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공격을 받아야 했고 전라도출신이라는 이유로 경상도 출신 기득권자들에 의해 철저히 배척 받아야 했다.

어쩌면 그의 삶은 제주도의 현대사와 닮은꼴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50년간 은폐되고 왜곡되어 역사로부터 철저히 배제됐던 제주도의 4.3을 햇빛으로 이끌어냈고 4.3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법제정을 이뤄냈다.

제주도민들은 아직도 기억한다 2000년 1월 11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4.3유족회와 4.3단체 지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4.3특별법에 서명하던 그 감격의 순간을 말이다.

그 법에 의해 4.3의 진상규명작업이 정부차원에서 시작됐고 진상조사보고서가 공식 작성됐으며 희생자의 명예가 회복되고 4.3평화공원이 조성됐으며 4.3평화재단이 만들어졌고 4.3위령제에 해마다 정부 관료가 참석하는 공식위령제로 승격됐다.

또 그 법에 의해 만들어진 진상조사보고서에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다수 희생됐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해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도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룬 일을 자기가 따라 하는 것일 뿐이라며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김 전 대통령이 큰 역할을 했음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보수우익세력에 의해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운동이 폄하되고 평가절하됨은 물론 또다시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준동하고 있어 도민들의 우려를 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4.3을 아예 제외하고 있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던 4.3의 기억, 제주도민의 아픈 삶을 아예 지우려하고 있다.

그의 50년 정치인생에 있어 많은 공과가 있지만 우리 제주도민들이 오래도록 기억해야만 할 일은 50년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금기시됐고 버려졌던 4.3을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소중한 교훈으로 되살린 그의 역할이다.

그것은 우리 제주도민들의 일그러지고 짓밟혔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 도륙됐던 우리의 삶과 역사를 바로세운 일이기 때문이다.
<강영진 정치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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