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은 언제 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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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논설위원>

제주는 문화예술의 불모지, 야구 불모지 제주도, 영적 불모지 제주, 청약시장의 불모지인 제주도, 실내건축 전문업체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제주지역, 문화의 불모지인 제주지역, 육상 불모지 제주, 과학수사의 불모지였던 제주, IT업계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제주, 제주지역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해양관광분야, 출판문화의 불모지인 제주, 기부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제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의 불모지인 제주, 호텔산업의 불모지에 불과했던 우리 제주, 프로 복싱에서 불모지와 다를 바가 없는 제주.

위의 글은 인터넷에서 ‘제주’와 ‘불모지’를 넣고 간단히 검색해서 나온 문구이다. 불모지(不毛地)란 식물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을 말한다. 사물이나 현상이 발달되지 않은 곳을 뜻하기도 한다. 제주와 관련지어서 불모지라는 단어는 널리 끊임없이 쓰인다. 제주가 척박하다는 구절도 회자된다.

왜 이런 표현을 이렇게 자주, 전 분야에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지겹도록, 마구잡이로 써야만 할까?

한마디로 척박한 불모지에서 이정도 하는 것이니까 봐달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삼촌한테 욕을 얻어먹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들이 있다. 일이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보다는 욕을 얻어먹지 않고 칭찬을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

최근 기특한(!) 일을 한 사람들은 성취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또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생색내기에 급급하다. 생색을 내면 그 일이 더 빛나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삼촌 칭찬을 들어야 하니까. 이런 자들에게 생색을 내는 것은 어떤 일을 성취하는 마무리 단계인 듯하다. 이들은 일보다도 평판을 중시하는 자들이며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닌 자이다.

남이 하찮게 보는 일일지라도 자기가 인생을 걸고 평생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굳이 칭찬을 받아야할 필요는 없다. 칭찬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평판에 의하여 얻어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훌륭한 자손에게 땅을 상속하듯이 훌륭한 조카에게는 떡이 돌아간다. 이 떡은 얻어먹을 자리가 되기도 하고 연구용역이 되기도 하며 각종 위원회의 위원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게 명성으로 임명될 자리가 아니라 전문성과 능력에 의해 임명될 자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과거에 잘한 일이 몇 개 있다고 해서 배분될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논리로 배분이 이루어지니 누구나 촌스러운 짓 즉 칭찬을 쥐어짜는 짓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낮은 산이 높아 보이기 위해 산 주변을 깎아서 불모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도무지 제주는 언제까지 불모지여야 하는가?

안쓰럽고 측은한 자들은, 잘했으면 잘한 대로 못했으면 못한 대로 그만인데, 자꾸만 칭찬을 짜내고 변명을 휘둘러 햇빛을 가리려고 한다. 그건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인 것 같을지 모르지만 남이 보기에는 아주 우스워 보인다. 일을 못하고 변명을 둘러내면 일을 못했으니 무능해 보일 것이고 변명을 하니 인간성까지 나빠 보이는 것이다.

일은 뒷전이고 변명과 생색이 우선인 자들과 함께 일하면 변명과 생색을 들어주다가 시간을 소진한고 정작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변명과 생색이 일을 하는데 거치적거리는 것이다.

순간이동마술을 하는 마술사가 한 장소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서 번쩍 나타날 때 너무나 쉽게 그 일을 한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면 보기 좋다. 그런데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옷이 다 구겨져서 간신히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온 듯 보이면 수고했다는 생각이 드는가? 비교해 보라 생색내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제주엔 언제쯤 털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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