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갔다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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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산소에 벌초 가는 날. 어머니가 따라 가겠다고 아침부터 먼저 길에 나와 섰다.

몸도 안 좋은데 집에 계시라고 하니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보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신다.

산소에 가면 그늘에 앉아있을 약속을 하고 나섰다. 그런데 산소에 도착한 어머니는 구석구석 작은 풀까지 뜯어내고 파내는 것이 마치 어린 시절 내 머릿니를 잡아내는 것 같다.

그렇게 벌초를 하고 돌아오는 길. 흘끗 뒷자리에 탄 어머니를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산소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를 보고 있다.

▲벌초와 성묘는 주술적 기복(祈福)의 효(孝)사상이 만든 문화다.

조상을 잘 섬겨야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로는 그 것보다는 감사와 반성과 참회의 한 양식이 됐다.

이 세상을 물려준 이들에게 감사하고, 또 무언가 잘못 살아온 날들에 대한 참회를 하고, 반성과 새로운 다짐을 하는 자리가 되고 있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벌초 갔다 오는 길이 우리의 ‘인생 교실’인지도 모른다. 평상시에는 잊고 살다, 사람의 삶이 결국 무덤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걸 깨우치면 이런 일 저런 일을 뉘우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벌초 길에서 만나면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반갑고 가까운 것같이 느껴지는 걸까.

벌초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다르다.

가던 길보다 더 환해지고, 왠지 마음이 새털처럼 가볍고 편하기만 하다.

가까운 이들만 아니라 살면서 얼굴 붉혔던 사람들까지,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벌초 갔다 돌아오는 길에서이다.

▲ 벌초가 아니더라도 옛 조상들은 사초(莎草)라고 해서 묘지에 잔디를 입히러 가기도 했다.

거기서 후손들을 지켜주기를 빌었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도 소분(掃墳)이라 해서 묘지를 청소하러가서는 그 사연을 알리기도 했다.

문득 삶이 팍팍하거나 슬프거나 쓸쓸하거나 외롭거나 절망적일 때 가장 가까운 누군가의 산소에 찾아가 보라고 한다. 부모나 조부모 산소에서 어디에도 말 못하는 답답함을 털어놓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화장(火葬)을 꺼리는 사람들의 마음엔 죄송한 탓도 있지만 마음 붙일 곳 없어지는 게 두려운 걸 수도 있다.

<부영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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