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날개를 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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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의관문물을 중요시했는데, 외출할 때는 물론이고 실내에서도 관모(冠帽)를 썼었다.
머리에 관모를 쓰지 않을 때는 변소에 갈 때, 침상에 들 때, 죄수가 되었을 때 정도이며 일을 할 때도 벗지를 아니했다.

관모 중에 벼슬아치들이 쓰는 것으로 사모(紗帽)가 있었다.
관 양쪽 뒤에 매미 날개를 단 형태의 모자였다.
이 매미 날개를 ‘사모뿔’이라 한다.

이 매미 날개를 단 것은 매미의 청빈고고한 정신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정말로 매미가 청빈고고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고려 고종때 문장가요, 술과 시와 거문고를 좋아해 ‘삼혹호(三酷好)선생’이라 불렸던 이규보(李奎報)가 쓴 방선부(放蟬賦)란 글이 있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하게 울고 있어서 이를 풀어 날려 보내니 곁에 있는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거미는 성질이 탐하고 매미는 바탕이 맑다. 욕심은 누구나 있지만, 이슬만 먹는 매미는 욕심이 없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가는 줄로 옭아매어 잡아먹는 욕심 많은 거미가 맑은 매미를 해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처럼 옛 선비들은 매미를 이슬만 먹고 깨끗이 사는 청빈고고한 선비의 기상으로 여겼다.

▲제14호 태풍 ‘매미’의 강습으로 제주지역에서는 5명의 인명피해와 340억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냈다.
실제 피해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관계자들은 제주지역의 피해가 미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16일 정부대책회의에서 제주도는 일본처럼 이번 태풍 ‘매미’로 인명피해 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 관계자는 이 회의에서 “매년 태풍과 집중호우가 이어지는 제주도는 재난에 대비한 주민훈련이 잘돼 있고 이번에 자치단체가 비교적 대응을 잘했다”고 칭찬까지 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에서 이번 태풍 ‘매미’에 대해 제주도의 자치단체가 잘 대응한 성공사례들을 다른 지역 지자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니 칭찬이 고맙기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이번 ‘매미’ 태풍에 잘 대응하고 일본처럼 피해가 미미했는가. 옛날 제주에 귀양을 오던 관리들이 이 섬이 보이면 매미 날개를 단 사모를 벗었다 하여 관탈도(冠脫島)라 했다고 하지만 섬을 보아야 관을 벗을 것인가.

우리가 흔히 기자(記者)를 ‘무관자(無冠者)’라 하는데 그렇다면 나같이 관이 아예 없는 사람은 매미 날개를 달 일도 없을 것이고 벗을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러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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