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飛揚島)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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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전설로 시작된다. 전설이 없으면 섬이 아니다. 섬이 있기 때문에 전설이 존재하고 그래서 섬은 신비롭다. 사람들은 전설을 모르고 섬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전설을 듣고서야 더욱 신비에 빠진다. 전설이 역사처럼 흥미진진하진 않지만 역사보다 더 실제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비양도는 다른 섬과는 달리 전설보다 역사가 먼저 나온다. 그만큼 젊다는 증거다. 제주도가 120만~70만년 전 사이에 태생한 데 비해 비양도는 천년의 역사가 전부다. 한림항에서 도항선을 타고 10여 분 남짓 달리면 비양도 포구에 닿게 된다. 도항선에서 내려 압개포구에 발을 내려놓으면 가장 먼저 비양봉이 함초롬하게 눈앞에 들어찬다.
비양도는 보기보다 더 작은 섬이다. 밖에서 보면 제법 의젓하고 오뚝한 모습이지만 막상 포구 안으로 들어서면 누이 젖가슴만 하게 솟은 오름이 전부다. 제주 본섬을 떠나 저리 봉긋하게 솟아오른 오름은 63개 부속 섬 가운데 비양도 하나뿐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비양도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중절모를 벗어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챙이 짧은 중절모처럼 오름능선을 빼고 나면 널찍한 운동장 하나 만들 만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기자는 큰 가오리가 유영하는 모습과 같다고 했는데 두 줄기로 뻗친 포구를 보면 정말 가오리 꼬리가 두 개였나 싶기도 하다.
포구를 벗어나 인가 몇 채를 지나치면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가 나타난다. 가정집보다 조금 크나마나한 단층건물에 운동장이라곤 농구장 한 코트도 채 안돼 보이는 곳, 두 학년씩 합반을 하는 이 학교의 전체 학생은 8명뿐인 미니학교다. 여느 초등학교마냥 그들이 쓴 그림, 붓글씨, 동시 등이 복도에 걸려 있는 걸 보면서 갑자기 초롱초롱한 얼굴들과 그보다 더 선한 선생님 얼굴이 떠오른다.
섬 일주를 하는 데는 자전거를 임대하여 휘휘 둘러볼 수도 있지만 일부러 유유자작 걸으면서 섬내음에 취해보는 편이 훨씬 낭만적이다. 시멘트 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 오히려 운치가 덜해졌지만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즐거운 시간을 갖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평상걸음으로 40여 분이면 족히 섬 한 바퀴를 돌 수가 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비양도에서는 서두르지 말고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것이 좋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숨쉬고,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둘러보아야 한다. 마치 명상수련원에 입소한 것 같은 자기착각을 불러일으켜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시계를 풀고 휴대전화조차 끄고, 한 마리 물고기 혹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여기가 내 하루 천국이로구나” 하고 일찌감치 심신을 정돈하면 자기 전설을 만들 수도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싶은 건너편 한라산 자락 아래 병아리떼 마냥 오종종하니 몰려있는 오름을 감상하기도 하고, 1000년 세월 동안 물오른 114m의 비양봉 능선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도 볼만하다.
재수가 좋으면 낚시꾼들이 건져 올리는 힘찬 벵에돔의 활력을 볼 수도 있다. 걷다보면 섬 뒤쪽 길가에 전시해 놓은 수석들을 만나게 되는데 마음이 동하면 그 유명한 비양도 화산석을 직접 주워보기도 한다. 그러나 기대는 않는 것이 낫다. 벌써 비양도를 사랑하게 되어 있을 테니까.
‘떠있는 오름’ 비양도의 진가는 안에서보다 밖에서 나타난다. 한림권 해안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그림 같지만 극치의 미는 협재해수욕장 쪽에서 바라보는 것.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그곳은 바로 동화의 세계가 된다. 관광객들이 한두 장씩 찍고 가는 사진 속의 섬, 저 아름다운 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섬 주민들의 염원처럼 관광자원화할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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