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심방의 감각적인 가위질, 神을 오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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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예총 기메지전 12월 모앙갤러리...양창보 심방 제작 기메 40여 점 전시

지난 27일 오후 2시께 제주민예총 강의실. 한복 차려입은 양창보 심방(심방굿놀이 보유자.76)이 직사각형 한지를 길게 한 번 두 번 세 번 내리 접더니 한쪽 끝을 버선발로 지그시 밟고 다른 쪽은 왼손에 쥐었다.

심방의 바른손은, 곧 가위를 집어 들고 종이를 쓱쓱 오리고 잘랐다.

가윗날은 곧게 쭉 직행하다가도 일순 좌우로 방향을 틀고 때론 원을 그리며 백지 위를 종횡무진 누볐다. 일련의 재단과정이 가히 예술이었다. ‘가위손’이 따로 없었다.

실제 굿판에서 오랜 내공을 쌓은 큰 심방이 아니고선 그런 손놀림이 나올 수 없다는, 무속계의 설명이다.

잠시 후 가위를 내려놓은 그가 종이를 들어 양옆으로 살포시 당겼다. 잘린 조각을 공중에 흩뿌리며 펼쳐진 한지는 인간 혹은 신(神)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기메였다.

제주굿판에서 제상에 걸려 신을 상징하는, 바로 그 지제물(紙製物)이다. 엄숙하게 굿판을 이끌고 제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기능도 기메의 몫이다. 기메지전.기메전지.기메기전.기메전기 등으로도 불린다.

양 심방의 기메들이 오는 12월 11~17일 갤러리모앙에서 선보인다. 제주민예총이 주최하고 양미경 작가(제주대박물관 특별연구원)가 기획한 ‘붓질보다 더 감각적인 고새질-기메지전’을 통해서다. ‘고새질’은 가위질을 뜻하는 제주어.

양 심방은 지난 15일, 21일에 이어 전시브리핑을 겸한 이날까지 3회에 걸쳐 민예총 강의실 등에서 전시에 내보일 기메를 제작했다.

민예총의 기메 전시는 이미 2005년, 2006년에 ‘신화의 상상 기메전’ ‘너울거리는 삶의 희로애락 기메지전’이란 제명으로 마련됐다. 두 번 모두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기능보유자 김윤수 심방이 만든 기메들이 내걸렸으나, 이번엔 양 심방 작 기메가 나온다는 점이 관람 포인트다.

특히, 기메 색의 운용이 지난번과 크게 다르다. 예전엔 오색색지로 만든 기메들이 대다수였던 반면 이번엔 백색 기메만 전시된다. 굿의 본래 의미를 되돌아본다는, 전시 취지에 조응해서다.

전시 기메는 40점가량. 저승차사기, 살전지, 육고비, 살장, 조왕기, 오방기 등등 종류별로다.

이번 전시는, 기메를 ▲굿판에서 전시장으로 옮겨 제의적 설치미술로 승화하고 ▲미술교육용으로 활용을 꾀하고 ▲제주대표문화콘텐츠로 구축할 방향을 모색하는 취지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전시는 큰 심방들의 고령화로 기메 제작기능도 소멸위기에 처한데 따라 전통문화 원형보존.전승차원에서 기메 전 제작과정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의 절박함을 일깨운다.

전시를 기획한 양 작가는 “굿의 시작을 알리는 기메지전은, 굿판을 벗어나 현대미술 관점에서 보자면 손놀림이 능수능란한 심방의 가위질을 따라 펼쳐지는 감각적인 종이예술이다. 심방만이 통달한 비법을 따라 순식간에 작동하는 가위질은 마치 마법처럼 신비롭다”고 밝혔다.

이어 그녀는 기메지전의 매혹은 종이 접고 자르고 오리는 연속적 손놀림과 단박에 끝장내는 가위질 행위에 있는데, 가위질의 경우 무수히 반복해 표현하는 연필이나 붓질에선 미처 느낄 수 없는 단호함이 도드라지고, 이 같은 단순함에서 강렬한 추상성이 표출된다고 강조했다.

<김현종 기자>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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