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쟁점은 해석이 불분명한 ‘기타 국가 안위’이다.
‘국가의 안위’는 말 그대로 나라의 안전에 위험이 닥쳤을 때를 뜻한다. 이 때 대통령이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을 직접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한 것으로 보는 게 상식론이다.
국민투표제도는 중요한 국가정책을 국민 스스로 결정하고 국가기관간에 충돌이 발생한 경우 국민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위기국면 타개 또는 권력 강화와 최악의 경우 독재정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악용될 소지도 있다는 게 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이다.
물론 국회와의 충돌 문제는 보는 각도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 주변 비리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이 재신임을 국민들에게 묻겠다는 데 대해선 법리 요건이 충족되는지 확실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행 법률 요건상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지, 또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대통령이 반드시 사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리 해석부터 내려져야 한다. 노 대통령 자신은 물론 학계와 법조계도 자의적으로 법 정신에 위배되는 결론을 내리려고 해선 안될 일이다.
초법적인 행위는 법치주의 정치원리에 위배된다. 법치주의 국가권력은 반드시 법률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 국가권력이 먼저 법을 어기거나 임의로 해석하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준법정신을 강조할 수 있겠는가.
최근 사법시험 등에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가 현행 헌법상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는 것만 보더라도 헌법 제72조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 충분히 예견돼온 일이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은 잘못이 크다.
정치권이 합의만 하면 재신임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먼저 위헌 여부부터 가려낸 뒤 실시해야 국민투표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위헌 논란을 무릅쓴 재신임 투표가 빚을 후유증도 감안한 국민투표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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