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물질, 신명나게 난타를 치며 피로를 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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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온평해녀난타
▲ 온평해녀난타(회장 이재복) 팀원들이 하루 일을 끝내고 성산고 음악실에 모여 신명나게 북을 치며 난타를 배우고 있다.

“신명나는 난타를 배우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둥둥둥…쿵쿵쿵, 덩덕쿵’ 지난 3일 성산고체육관에는 힘찬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다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성산읍 온평리 해녀들이 신명나는 난타공연에 나선 것이다.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는 청중들을 압도했고 퍼포먼스와 어우러진 해녀들의 공연에 주민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판을 벌였다.

온평해녀난타(회장 이재복.54)는 9명의 해녀들이 의기투합, 지난해 4월 결성했다.

문화예술을 접하기 힘든 반농반어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였다. 풍물의 고수이기도한 이들은 5년 전부터 마을 잔치나 행사에 불려나갔던 사물놀이 단골 공연팀이었다.

해녀노래에 사물놀이, 여기에 신세대 음악을 접목해 남녀노소가 모두 즐겁고 흥겨운 ‘작품’을 찾던 중 난타를 접하게 됐다.

이재복 회장은 “깊은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되지만 북채를 잡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며 “해녀들끼리 전승돼 왔던 구성진 해녀노래에 난타를 접목해 재미있고 활기찬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다는 이들의 삶터이자 인생을 알게 해준 배움터다. 40년째 물질을 해왔던 이 회장도 한 번은 빈혈로 바다 깊은 곳에서 의식을 잃었다.

동료 해녀들이 그녀를 구하고 병원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 곁을 지킨 우정은 진하고 끈끈하다.

뼛속까지 얼어붙게 하는 겨울바다에서 목숨을 함께 해 왔기에 온평 해녀들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온평리는 벽랑국의 세 공주가 다섯가지 곡식과 소와 말을 데리고 상륙한 곳.

탐라국의 왕이 배필이 없어 나라를 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제주도를 함께 일구기 위해 찾아온 벽랑국의 세 공주, 그들의 후예들이 바로 혼인지 바다의 해녀들이다.

강애춘 총무(46)는 “바닷속을 누비는 해녀들은 강인하지만 내면은 따뜻하고 인간적이죠.

해녀들도 뭔가 해보자며 난타를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취미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성산일출제, 탐라문화제, 서귀포칠십리축제에 러브콜을 받으며 프로팀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어버이날이나 칠순잔치에는 경로당을 돌며 무료 공연도 선하하고 있다. 요양원도 짬짬이 방문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 나들이가 힘든 노인들을 위해 율동을 곁들인 난타로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다.

온평 해녀들은 바쁘다. 오전에는 소라를 따고 오후에는 당근, 양배추, 감귤 등 밭농사도 척척 해내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매주 목.금요일 늦은 저녁, 성산고 음악실에 모여 북을 치며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일을 할 때나 공연을 할 적에는 항상 신명이 나고 떠들썩하지만 난타팀에 젊은 해녀들이 없는 게 못내 아쉽다.

김연희씨(53)는 “아주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바다에서 놀고, 소녀시절에는 잠수놀이를 한 것이 자연스럽게 해녀가 됐는데, 요즘은 ‘일이 고되다’며 젊은 여성들이 기피하는 직업이 됐다”며 근심이 역력했다.

실제 온평리 해녀 200여 명 중 84세의 고령해녀가 건재하지만 20, 30대 해녀는 단 한명도 없다.

해녀가 점차 사라지고 고령화되면서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고앵숙씨(49)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어머니가 해녀인데도 딸들은 수영을 못하는 게 요즘은 자연스러운 세상이 됐다”며 “해녀가 사라지기 전에 제주사회에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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