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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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년)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일부다.
오래 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에 자주 인용되며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행로에 대한 아쉬움과 의지가 닿지 않는 운명에 대해 자각하는 시로 잘 알려져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선 청소년기에 이 시를 읽으며 앞으로 끝없이 펼쳐질 인생에 대한 호기심과 존재에 대해 사색을 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길’이 인생의 주제를 함축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일상적 삶을 제약하는 여러 문제들과 그에 대처하면서 겪는 시련과 좌절, 고뇌와 꿈, 그리고 희망의 엇갈림을 실감하게 된다. 때문에 이 시에서 ‘길’이 갖는 시간적 명제는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결국 ‘길’은 우리에게 가장 서정적인 공간인 동시에 운명을 바꿔 놓는 전환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5일 실시된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다음달 2일 발표된다.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10일부터 시작되고, 16일부터 내년 2월 초까지 대학입시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대학별 정시모집 요강은 이미 발표됐고 수험생들은 자신의 예상점수를 바탕으로 지원전략도 이미 세워 놓았을 것이다. 언어영역 문제에서 오답 시비가 일고, 출제당국이 출제 오류를 시인하고 복수정답을 인정하기로 결정하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해 수능이다.

“전문가들도 이의를 제기했지 않느냐. 5번도 맞다.”, “복수정답은 말이 안 된다. 2점 차이로 대학 못 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3번 정답자)라고 대변되는 복수정답 시비는 논란에 논란을 낳고 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행복순은 2점차…”라는 자조도 우리나라 입시제도만이 갖는 엄연한 현실이 돼버렸다.

어쨌든 수능성적 발표 예정일인 12월 2일, 수험생들은 또 다른 길 위에 서게 된다. 이제는 ‘가야 할 길’과 ‘가지 않은 길’이라는 기로에 선 그들에게 ‘길’은 인생에서 가장 얄궂은 시험대가 될지 모른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는 말하기를 인(仁)은 집안을 편안케 하고 의(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성이 같은 것이다. 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직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조선의 지리학자 신경준(1712~1781년)의 말처럼 길은 그 길을 걷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 위에 ‘가지 않은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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