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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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삶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잣대는 시기와 장소, 대상과 사물 등을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데 쓰이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떠한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개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그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이 결정된다.

나아가 개인의 잣대가 사리가 아닌 공정에 더 곧게 적용된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터이다. 바로 사회정의를 세우는 토대가 되고, 명확한 기준이 되어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준거(準據)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잣대가 이중적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혼란과 이기주의를 야기시켜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토록 우려하던 이중잣대가 만연하면서 혼란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커녕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더라도 자기만 잘되면 된다는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판치고 있고, 원칙과 장기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시대에 뒤처지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

대선자금으로 인한 공박도 그러하다. 우리의 정치권은 대선자금에 관한 한 철저한 이중잣대가 세워져 있다. 내가 받은 것은 정치자금, 남이 받은 것은 뇌물이라는 공식이 적용되면서 아무런 죄책감없이 기업의 돈을 무지막지하게 거둬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도 보험에 가입한다 또는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거대한 자금을 정치권에 쏟아부었다. 때문에 정치지도자로서, 또 기업인으로서 고유한 잣대를 잃어버리고 불신과 부정부패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총리지명자,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시 사용한 도덕성의 잣대를 정치인 자신들의 행동잣대로 삼았다면 결코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면 다 정당하고 합법적이고 생산적이고, 남이 하면 못마땅하고 일을 그르치게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그 대표적이다.

또 우리 사회는 고아를 해외로 보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자탄하면서도 우리가 입양하는 건 좀 거북해 한다는 것도 좋은 예이다. 또 있다. 아직도 피부색이나 외모로 인간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우리의 이중잣대와 선입견은 결국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까지 얻고 말았다.

남성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억압적인 사회가 갖고 있는 성의식의 이중적 잣대는 어떠한가. 더 큰 문제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일부 사회지도층들의 이중성이다.

사치와 낭비를 주도하고 있는 이 일부 지식인들의 속과 겉이 다른 말과 행동은 곧 나라를 망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이중잣대나 위선이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혹한 이중잣대의 실상을 하루빨리 타파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이제 양심의 기준이라는 잣대를 세워야 한다.

인간의 도덕성이라는 잣대 앞에서 바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의 눈앞에서 정당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양심의 잣대요, 도덕성의 잣대인 것이다. 곧은 물체의 그림자가 굽을 까닭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잇는 잣대를 똑바로 세운다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과도기적인 혼란은 분명 희망과 번영의 새 날을 여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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