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악명 높은 새디스트(sadist)다.
그는 숲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짐보따리를 강탈했다.
그리고는 나그네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 ‘준비된 침대’에 자게 한다.
키가 작은 사람은 큰 침대에, 키가 큰 사람은 작은 침대에 각각 재운다.
나그네의 몸을 침대에 꽁꽁 묶고 키가 침대 길이보다 작으면 몸을 침대만큼 늘여서 죽게 만든다.
또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 밖으로 나온 부분을 잘라서 죽게 만들었다.
그렇게 악명 높았던 프로크루스테스도 결국은 자신이 나그네에게 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아이갈레오스 산 부근 숲을 지나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를 제지해 자기집으로 유인한 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테세우스를 죽이려다 도리어 자기가 테세우스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이 정해 놓은 틀과 기준에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끼워 넣으려는 아집과 편견의 표본을 상징한다.
며칠 전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비리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하면 강하게 비난했다.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한 이튿날인 지난해 12월 30일 이 수석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뉘어 놓고 사지(四肢)를 맡기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을 의식해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그러면서 이 수석은 또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정치권은 말조심해야 하고 일부 언론은 글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 수석의 이 같은 발언은 왠지 이 수석 자신이 인용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나만의 기준’과 다른 검찰수사 결과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또 ‘말조심’하고 ‘글조심’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신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하거나 기사를 쓰면 어찌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으로 들린다.
올해는 김옥균이 주동이 돼 갑신정변을 일으킨 지 꼭 120년이 되는 해이다.
올 갑신년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에다 총선 등 많은 정변(政變)이 예고돼 있다.
정변의 회오리 속에 이 말 저 말들이 무수히 오갈 것이고 그러다보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도 우리 사회에 횡행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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