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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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장마와 태풍 몇 개가 언제나 그랬듯이 마지막 여름이 아쉬운 듯 기승을 부리더니 제법 아침저녁에는 이불을 찾게 만든다. 그 뜨거웠던 열기의 계절을 키가 큰 코스모스가 작별을 고하는 듯 바람에 이리저리 살랑거린다.


하루는 여행 온 친구에게 자동차를 빌려주고 나서 근무하는 학교에서 집에까지 걸어가 보았다. 큰 도로의 뒷길은 마침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오솔길인데 사박사박 걸으니까 한 30분은 걸린다. 걷다보니 약간의 물이 흐르는 시냇물도 있고 사람이 많이 안 다녀서 그런지 몇 발자국마다 풀이 밟히는데 그 감촉이 좋다.


마침 앉아서 쉬기 좋게 생긴 넓적한 바위가 있어서 앉아보았다. 비가 온 후 한라산에서부터 심연의 골짜기를 타고 먼길을 흘러와서 그런지 무척 깨끗한 물이 앉아있는 바위를 한 번 감싸고는 다시 돌아 흘러 내려간다. 그 물이 어찌나 맑은지 파란 하늘이 고스란히 비쳐서 마치 바위에 앉아 있는 내가 하늘에 떠있는 듯 하다.


나뭇잎 몇 개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며 조각배처럼 동실동실 떠내려 오는데 아니 벌써 빨갛고 노란색이….


첨벙 하늘에 내려서 나뭇잎을 주었다. 모양이 너무 예뻐서 옆구리에 항상 끼고 다니는 포켓용 스케치북에 여러 번 그려보았는데 모양이 잘 안 된다. 물이 맑으니까 저렇게 하늘도 수용하고 그 흔한 나뭇잎조차도 의미를 실어 느끼게 하는데…. 마음을 닦아 영혼을 맑게 해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보니 해가 서쪽으로 많이 가 있어서 일어서려는데 하늘이 점점 붉어진다. 삼나무와 소나무 사이사이로 붉은 빛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 뿌려지는 모습은 그동안 자동차만 타고 다니다가 기계적인 습관에 물들어 살고 있는 필자에게 좋은 작품 하라는 경각심을 갖게 하며 훈계하는 듯하다.


노을 빛만큼이나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동안 이 길을 왜 안 걸었던고 후회가 막심하다. 매일 걸어다닐 수만 있다면….


아니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이런 기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역시 인간은 자연상태 속에서만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상자 곽 같은 도시에 찌들어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처해있는 상황만큼이나 심성이 피폐해져가고 있기 때문에 가끔 숲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권장하고 싶다.


숲에 친숙해지면 그때는 책도 서너 권 가지고 들어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무한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보는 것이 아마 정신건강에 제일 좋은 보약이 아닌가 싶다.


봄에는 꽃을 보며 여름에는 땀 흘린 후 신선한 솔 향기를 맡으며 가을에는 가끔 뛰기도 하고 겨울에는 뽀드득 눈을 밟으며 사계절 마음을 닦으며 걷는 것이 어떨까….


자! 핸들을 버리고 올 가을부터는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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