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제주 풍광속에 고통스런 역사 숨겨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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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 기획2]제주 곳곳에 일본군 전쟁 유적지 산재
▲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에 있는 일제시대때 구축된 진지동굴 내부 모습.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36년간 치욕스러운 식민지로 전락했던 한반도에서 일제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제주도이다.

다른 지역 일제 군사시설이 해방 직후 일어난 6.25전쟁을 통해 대부분 파괴된 것도 이유지만 중국과 일본의 중간인 제주의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일제가 대륙의 침략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다양한 군사시설을 제주 곳곳에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내쫓겨 일제 군사시설 건설에 강제동원됐다.

이렇듯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 속에 아픈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제주에 가장 고통스러운 우리 역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2006년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도내 일본군 전쟁 유적지는 모두 12곳으로 ▲사라봉 동굴진지 ▲어승생악 동굴진지 ▲가마오름 동굴진지 ▲서우봉 동굴진지 ▲셋알오름 동굴진지 ▲일출봉 해안 동굴진지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모슬봉 군사시설 ▲이교동 통신시설 ▲셋알오름 고사포진지 ▲송악산 외륜 동굴진지 등이다.

사라봉 동굴진지 등 11곳의 동굴진지는 당시 일제가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제주도를 병참기지화 하려고 한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인공적으로 구축된 동굴형태의 진지로 다른 곳과 달리 다층의 미로형 구조로 조성되었으며 넓은 곳과 좁은 곳을 상호 교차시켜 적으로부터 쉽게 발각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

또 셋알오름 고사포진지는 당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5기의 고사포 진지 중 2기는 완공되고 나머지 3기는 미완공된 상태로 남아 있어 수세에 몰려 패망으로 치닫던 일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일전쟁을 앞둔 일본은 비밀리에 현재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알뜨르’에 비행장 건설을 계획했다. 대륙 침략을 위한 해군 항공기지가 필요했던 일제는 1926년 일본과 중국의 중간 거점이 되는 알뜨르에 20만평 규모의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해 10년만에 완공했다.

1937년 중국인 3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난징대학살 때 엄청난 폭격을 가했던 일본의 폭격기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있는 오무라 해군 항공기지를 출발해 제주 알뜨르에서 연료 등을 공급받았다.

알뜨르비행장은 1944년 중반 이후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방어선으로 정한 일제의 ‘결7호작전’을 통해 미군의 폭격에 대비해 군사시설을 지하에 감추게 된다.

전투사령실, 병사, 의료시설,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 정비공장, 어뢰 조정고, 통신실, 발전소 등 여러 군사시설을 지하에 숨겼으며 현재는 활주로와 나지막한 돔 형식의 격납고, 관제탑으로 추정되는 구조물, 지하벙커 등이 남아있다.

알뜨르비행장 건설을 위해 하루 5000여 명의 주민들이 공사에 동원되었는데 당시 제주도민이 7만5000여 명에 불과한 것에 비추어보면 얼마나 많은 주민이 공사에 동원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최후의 결사 항전을 각오하며 ‘결7호작전’을 통해 섬 전체를 요새화하려는 계획에 따라 해안에는 특공기지가 구축되고 오름에는 진지굴이 구축됐다.

1945년 6월 일본군의 최고 통수기관인 대본영(大本營) 기록에는 제주 진지굴과 관련해 ‘6,7갈래, 동굴 3만2천미터’라는 메모가 있다. 최소한 제주도에 32㎞ 규모의 진지굴을 팔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주도 서남쪽 모슬포 일대의 알뜨르, 알오름, 송악산 등에 일제의 군사시설이 집중됐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대략 80여 곳의 오름에 진지굴 700여 개가 뚫려 있는데 이 진지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셋알오름 진지굴로, 그 길이가 1220m에 달한다.

셋알오름 진지굴은 바둑판처럼 얽히고설켜 여간해선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형태이며, 셋알오름 정상에는 비행기를 공격하기 위한 고사포 진지가 2곳 그대로 남아있다.

대정읍 송악산 해안 절벽 아래쪽에는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를 알리는 알림판 뒤로 인공 진지굴 14개가 늘어서 있다.

일본이 소형 어뢰정 ‘카이텐(回天)’을 감추기 위해 제주인을 강제동원해 파높은 진지굴이다.

카이텐은 폭약을 싣고 모잠수함에서 발사된 뒤 탑승한 특공대원이 조정해 상대방 함선에 충돌하는 자살 공격용 병기로 비행기를 탔던 ‘가미카제(神風)’와 비슷하다.

도내에서 산재된 진지굴의 규모와 구조는 현재 정확히 단언하기 힘들다. 일본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구축된 진지굴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조사를 할 때마다 추가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진지굴을 파는데 동원된 제주도민은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굶주림 속에 맨손으로 삽과 곡괭이를 들고 노역을 했으며, 레일을 깔아 굴에서 파낸 흙과 돌 부스러기를 실어 날랐다.

15살 이상의 남자들은 대부분 1~2개월 단위로 여러 차례 강제로 노무에 동원됐고,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다치기도 했다.

제주에 있는 일본군 전쟁 유적지들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다.

또 당시 강제 동원돼 노역에 시달렸던 주민들의 증언을 통한 일제의 만행과 수탈에 대한 조사 등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제가 제주에 구축한 동굴진지 등 수많은 군사시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 활용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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