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진(一字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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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다. 임진년 개전 이래,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믿었다기보다는, 그렇기를 바랐다.”(이순신)

난세의 영웅 이순신의 독백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순신은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승을 거둔 명장이고, 영광의 정점에서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완결되는 영웅으로 기억된다.

난세의 영웅은 난세에만 기억되는 법인가.

최근 이순신의 적나라한 실존적 세계관을 보여준 한 권의 장편소설이 화제다.

탄핵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꺼내 읽고 있다는 김훈의 ‘칼의 노래’다.

지난해 7월 노 대통령은 모 방송사에 출연,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 굉장하다”고 평한 바 있는 이 소설은 전쟁이란 극한 위기 앞에 선 이순신을 그려내고 있다.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해도 그의 목을 노리는 대신들에 의해 제거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질 수는 없는 참담한 심정을 그리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 이순신의 비장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호사가들은 현재 극한의 어려움에 처한 대통령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더 가까이 하고 있지 않나 하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지난 23일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던진 일성도 이순신이다.

수락연설을 통해 박 대표는 “저는 오늘 신(臣)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면서 이 자리에 섰다”며 “우리 한나라당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순신이 명량에서 달려드는 300여 척의 적선들을 일자진으로 맞았던 그 전선 12척이다.

“바다에서 진(陣)을 어찌 펼치실 요량이신지…?”라는 군관의 물음에 이순신은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一字陣)뿐이다. 일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라고 답한다.

이순신이 명량에서 크게 이긴 이 전투는 전쟁의 국면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7대 총선 후보등록이 오늘 마감된다. 이제 여야 후보들은 그야말로 일자진을 펼치며 내일부터 공식선거운동이 돌입하게 된다. 각각의 후보들이 드러내놓고 한 표를 호소하겠지만 이제 공은 유권자들에게 돌아왔다. 15일 유권자들이 선택할 한 표 한 표의 향방은 한국 정치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투표하기에 앞서 충무공의 다음의 말을 되새겨보자. “칼은 한 번 긋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다. 그을 때마다 생사가 명멸했으니….”(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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