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도 통행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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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폭설 때 고속도로에 갇혔던 피해자들이 소송을 냈다. 잘한 일이다. 휴일 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심경이다. 말이 고속이지 저속도 아닌 아예 주차장이다. 그러고도 꼬박꼬박 통행료를 챙기는 도로공사가 너무 얄밉다. ‘막히든 말든 그게 왜 우리 책임인가?’ 아마 이런 생각이겠지.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다. 거기다 갓길 얌체운전자까지 등장하면 정말이지 들이받고 싶은 심정이다. 치미는 분노와 함께 무력감에 빠진다. 이 역시 공사 책임은 아니라고 강변하겠지. 하지만 시민의 원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겸허히 들어야 한다.

지난 폭설 때 공사측 해명에 일말의 동정은 간다. 처음 얼마는 통상적 막힘이려니, 하고 늑장을 부렸다는 대목도 이해간다. 그 계절에 100년 만의 폭설이라니 말이다. ‘이게 아닌데’하고 나섰을 적엔 이미 통제불능상태, 속수무책이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문제는 다음이다. 응급조치도 문제였지만 그 난리통에도 통행료만은 받아 챙겼다는 사실이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분개한 건 그래서다. 진입 차량을 막지 않은 것도 장삿속이었다는 비아냥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내 환자 한 분은 돌바기 아기를 안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계속 눈은 쌓이고 차는 꿈쩍 않고, 밤은 깊어가고, 거기다 기름까지 바닥났으니 춥고, 배고프고, 아기는 울음마저 그치고…사방은 깜깜한데 어디쯤 얼마를 가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공사측 전화는 불통이고, 참으로 절박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겨우 길이 열렸다.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한데 이건 또 뭔가. 통행료를 내라니. 미안하단 사과 한마디 없이. ‘그래, 냈어요?’ 듣는 내가 더 성이 난다. ‘안 내고 어떡해요?’ (이런 멍청한 사람하곤!) 이 말이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게 도로공사다. 어떤 경우에도 통행료만은 받아야 한다는 데 집착한다. 해서 연간 2조2000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그 돈으로 도로보수도 하고 새 길도 만들겠지. 덕분에 우리 도로사정은 선진국 수준이다. 하지만 그만하면 됐다 싶은 생각도 든다. 돈이 남으니까 새로 길을 뚫는 건가, 의구심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새 길들이 필요한가? 교통량 측정은 정확히 했을까? 이러다간 좁은 반도가 온통 길로 뒤덮일 게 아닌가. 도로는 역사와 전통. 그 고장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문외한이 왜 이런 소리까지 해야 하는지 잘 살펴주기 바란다. 넉넉잖은 나라살림에 지금 우리에겐 당장 써야 할 곳이 너무 많다. 도로에서 번 돈은 도로에만 써야 하는 건 아닐 터이다. 법이 그렇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짜임새 있는 나라살림이 됐으면 좋겠다.

도로도 서비스다. 국민의 정서도 잘 살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차도 2시간 이상 연착하면 급행료를 환불해주었다. 사과와 함께, 상냥한 웃음까지. 그 딱딱한(?) 철도 공무원으로선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그렇다고 막힌 휴일 고속도로를 공짜로 타겠단 소리는 아니다. 다만 추석이나 설날만은 톨게이트 문을 활짝 열자는 간청이다. 국민 대이동이라는 표현처럼 명절 귀성객의 긴 행렬은 보기에도 장관이다. 외국사람은 우리의 그런 아름다운 전통을 부러움과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거기다 명절엔 통행료도 안 받는다니! 얼마나 흐뭇하고 자랑스러울까? 가난한 문화재 관리청도 명절엔 고궁을 개방한다. 이웃과 함께 떡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명절이다. 그런 날까지 장삿속을 채우려 들진 말자.

지난 폭설 피해자의 통행료는 늦게나마 뉘우치고 환불해 주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된다. 오죽하면 피해보상 소송까지 냈을까. 법정에까지 가지 말고 선뜻 보상해 주는 아량을 베풀기 바란다. 내 환자와 아기의 진료비까진 청구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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