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동지
적과 동지
  • 송용관
  • 승인 200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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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후 3차례나 전쟁을 치른 프랑스와 독일이 최대 우방이 된 연유를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는 일화 중 하나가 있다.

나치 친위대(SS) 총책임자 히믈러가 독일이 항복 직전 당시의 적인 프랑스의 샤를 드골 장군에게 보낸 밀서에서 비롯된다.

히믈러는 ‘앵글로색슨과 협력할 것인가’라는 내용을 담은 질문을 던지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미국과 영국에 대항하자는 제안에 드골은 처음 이를 묵살했지만.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급속히 확산되자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데서 연유되고 있다.

당시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만난 것이다. 한마디로 관계 개선이다.

비록 적과의 동침의 역사는 미국의 압도적인 힘 행사에 에피소드로 막을 내렸지만 이후 유럽연합이라는 공영의 화수분을 남겼다.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분야 등이 모두 그렇듯 사람들의 인생살이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는 갈등과 화해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4.15총선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의 시간은 너무 길고 그 시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요즘 웰빙 바람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는 요가의 근본은 조화로운 삶의 추구에 있다. 누구든 조화롭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든 희생을 입게 된다.

자신과 생각이 어느 정도 같지 않으면 적으로, 아니면 이단자로 몰아세우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면 언젠가는 더 큰 화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말을 해서 그것을 되갚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처를 주는 행동과 언어로 대응할 때 상대방은 훨씬 더 잔혹한 행동과 말을 찾아 앙갚음을 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면 보복과 싸움이 되풀이될 뿐 끝끝내 끝낼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갈기갈기 갈라진 이번 총선도 15일로 막을 내렸다.

노자는 ‘길고 짧음은 서로를 통해 모양을 이룬다’고 했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집착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헤맬 수는 없는 일이다.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버리고 조화를 추구할 때 경제도 정치도 인간사회도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지양해야 할 것은 대립과 갈등, 적과 동지가 아닌 화합과 나눔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일그러진 우리 사회지만 이번 17대 총선의 막을 계기로 통합과 상생의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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