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지가 돌고, 뚜껑이 열려, 김이 모락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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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신호등 앞에서 차선을 바꾸는데 뒤에서 비명 같은 경적소리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다. 속도 내고 오던 차를 못 보고 내가 선을 바꾸어 끼어 들면서 그 앞을 가로막는 짓을 한 셈이 되고, 그 차는 하마터면 내 차를 받을 뻔한 모양이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렸다.

본의 아니게 다른 운전자에게 피해를 준 점 미안하고 또 사고를 방지해 준 그에게 순간적으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차들이 출발하고 흐르는데 뒤에 차 한 대가 요리저리 휙휙 틀면서 선을 바꾸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휙 달려들어 급제동을 걸게 했다. 그리고는 아주 느린 속도로 계속 막아서서 운전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내가 당한 것을 너도 똑같이 당해 봐라’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그만하면 알아듣겠는데도 그 차는 계속 앞을 막고는 그려진 차선을 반씩 걸쳐 차지하여 이쪽 선도 저쪽 선도 내가 택하지 못하게 하면서 느리게 가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길이 갈리는 데 오더니 그 운전자는 차창을 내리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무슨 욕인지 저주인지 하늘에 쏟아놓고는 사라졌다.

사고 낼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이렇게까지 즉각적으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아니 아직도 화가 안 풀린 사람인 것 같았다. 내 인내심도 별 수 없어서 속에서 뭉게뭉게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래 실수할 때 좀 이해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운전실수 때마다 그대로 사고를 당했다면 운전자들 중에 살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냐, 다 주위에서 애써서 사고를 막아준 덕으로 오늘까지 목숨 부지한 것 아니냐, 너 때문에 나도 이 좋은 토요일 오후에 기분 더러워졌다. 이제 됐냐….’ 마음 속에 사나운 물결이 일면 다스리는 데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며 그 대신 누릴 수 있었던 아기자기한 시간과 가지가지 감미로운 느낌은 산산이 조각나고 만다.

인간도 짐승인 게 확실하고 정글의 법칙 그대로 먹히고 먹는 것이라고 하며, 천적이 없는 대신 인간은 서로를 죽이고 괴롭히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도 사회를 이루고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교육과 약속을 통해 좀더 나은 차원으로 나아가 보자고 노력해 왔

던 것도 인류 역사가 아닌가. 그래서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고 언어학자들은 살아가는 대표적인 기술로 대화에 눈을 돌리고 진정한 의사소통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또 삶을 사는 데 불필요한 소모와 고통을 막기 위해서 대화하는 데에 어떤 인식과 실천이 필요한가 연구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언어활동이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대화의 기술도 어느 정도 파악하여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행동은 다 마음의 반향이다. 우리의 일상을 보면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질병과 환경 파괴, 사랑의 부재 같은 것일 텐데, 세상 물살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흐르며, 급류에 실려 가는 우리 대부분이 진정으로 우리의 행복을 막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할 틈도 없이 살게 된다.

그러다가 제 성질 제가 못 이겨 주체할 수 없이 화를 내고 파괴충동에 휩쓸려 자신을 해치고 주위 사람을 해치곤 한다. 이를 고치지 못하고 마냥 나쁜 습관을 붙들고 사는 것을 보면 우리는 질투와 미움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화낼 때마다 뇌세포가 2000개 이상 와르르 깨지고 흰머리와 주름살이 늘고 있으니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를 내게 된다.

그래 꼭지 돌고 뚜껑 열고 모락모락 김 내며 주위를 온통 지옥으로 만들고, 괴물 같은 얼굴 표정으로 심신을 망가뜨리면서 이미 정해져 있는 죽음을 좀더 재촉하겠다는 데 말릴 수 있는 자 그 누구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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