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먹히지 않는 이유
과학이 먹히지 않는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이기호·소설가·광주대문예창작학 교수>





시국이 시국인지라 요사인 점심식사 때마다 전쟁 이야기가 식탁에 오르내린다. 어떤 신문의 논설위원이란 사람은 우리의 공군 전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사흘만 참아주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요지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확신(확신하는 자들은 당연히 고민이 없다)이 버젓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만큼, 이즈음의 상황은 다분히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6·25 트라우마를 하나둘씩 꺼내, 다시 현재에 대입하고 있다. 대부분 보도연맹이나, 좌우익 사이 벌어진 피의 보복극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 형, 이 형도 지난번 시국선언 때 서명하지 않았나? 그러면 100% 좌익으로 몰리겠네. 전쟁 나면 어디 살아남겠어?” “에이, 어디 그런 일까지야.” 웃으면서 말을 받았지만, 전쟁이라는 비이성적인 공간이 불러올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씁쓸해졌다.

예전에 비해, 우리 사회가 외면적으론 보다 이성적이고, 보다 합리적인 사고 방식에 접근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1950년대보다 정파 간의 갈등은 더 격해졌고, 그에 따른 적의는 더 날카로워졌고 첨예해졌다. 전선 자체의 경계가 명확히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그 피해가 더 크면 컸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 설령 사흘 만에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몰고 올 여파는 무시무시한 공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이미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아 알고 있다. 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여전히 전쟁 중인 상황들. 그 안에서 최고 권력자들을 뺀 나머지 국민들은 오로지 고통만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국가 간의 전쟁이 갖고 있는 진짜 본질이다.

그래서 이즈음의 상황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전쟁이 발발하는 계기들이란, 대부분 우연적이고 국지적인 충돌들 때문이다.(세계대전의 시작은 언제나 누군가가 발사한 총 한 발 때문에 비롯되었다.) 그런 우연과 충돌을 제어해주고 예방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자들의 몫일 텐데, 작금의 모습은 어쩐지 그 반대의 경우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제어와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 수뇌부들은 당당하고, 정부와 여당은 발 벗고 나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역전된 상황 때문에 국민은 의심하고 신빙성 없는 괴담들만 흉흉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의 처리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정부에서 아무리 과학적인 증거라며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를 해도, 왜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크게 두 가지 사안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하나는 작전에 실패한 군 수뇌부가 조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발표 시점의 문제일 것이다. 만약 이 정부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천안함 사태 직후 즉각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사건을 조사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신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사 발표 시점을 지방 선거 이후로 미루었다면, 그 신빙성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더불어 이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해왔던 ‘말 뒤집기’의 사례들이 겹쳐 불신의 폭은 더 넓어지고 광범위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을 강조해도, ‘과학’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표 때문에 ‘세종시’ 문제를 그렇게 뒤집었으니, 이번 역시 표 때문이지 않겠느냐, 이런 공식이 설득력 있게 통용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선거는 끝났다. 선거의 결과에 상관없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선거 종료를 기점으로, 이 송곳 같은 긴장 상태가 다소 누그러지길 바라는 마음 하나뿐이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맞다. 더불어 불안을 조장하는 권력들이란, 대부분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경우들도 맞다.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은 국민만이 권력을 올곧게 감시할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또한 권력자들만을 위한 전쟁을 막는, 유일한 국민의 길이기도 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