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정치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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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의 화두는 무엇인가. 단연 상생이 되고 말았다. 탄핵도 정치인들이 만들어냈듯이, 상생의 정치도 그들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상생하는 정치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런 말만 새 정치 유행어로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상생이란 원래 온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오행의 원리로 상극과 대를 이룬다. 상극은 서로 이기려고 하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서로 마음이 화합하지 못하고 항상 충돌한다는 보통의 의미로 쓰인다. 그에 대응하여 상생은 상대를 이겨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순환하는 가운데 살아나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의도가 짐작된다. 여야가 서로 헐뜯고 싸움질만 할 것이 아니라 도우면서 함께 살아나는 정치를 하자는 손짓이다.

상생의 정치라는 새 유행어가 탄생하게 된 데는 충분한 배경이 있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은 모두 기사회생한 셈이다. 열린우리당은 소수 집권당으로 야당과 언론에 휘둘리며 어렵게 1년을 버텨오다 예기치 못한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가운데 총선에서 이겨 극적 반전을 이루어냈다. 가까스로 잡은 정권까지 내놓을 위기에서 다수당이 되고 만 것이다. 한나라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수당의 힘을 오직 여당 몰아세우기에만 쏟다가 불법대선자금이 드러나 ‘차떼기당’의 불명예를 안고 바닥까지 추락했다. 그 지경에서 그래도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으니, 가히 지옥에서 탈출했다고 표현해도 과장은 아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상생을 들고 나온 모습은 당연할 수도 있다. 다른 말을 한들 국민이 귀기울이겠는가. 하지만 정치인들이 떠들어대는 상생이란 말 속에는 묘한 의미가 숨어 있는 느낌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상생이란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상생이란, 솔직히 까발리면 여당과 야당이 함께 살자는 것일 뿐이다. 국민과 나라를 살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우선 여야 자기들부터 살고 보자는 것이다. 양쪽 공히 끔찍한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 정치를 담당한 양대 정당이 먼저 힘을 얻고 난 뒤 국민 살림살이도 살리고 국가발전도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상생의 의미를 선의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아직 새 국회가 개원하지도 않은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진정한 상생 정치가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국무총리 임명 문제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국무총리 임명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행정 각부를 통할할 국무총리는 무엇보다 대통령이 신임할 수 있어야 한다. 임명할 땐 청문 절차도 거치고 국회 동의도 얻어야 하지만, 해임할 땐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야당은 벌써부터 신임 국무총리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을 거세게 거부하고 있다. 그것도 그 인물이 당적을 변경한 배신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분명 그들이 먼저 내세운 상생의 정치와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품성과 능력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대통령의 선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지난날 야당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상생 정치를 같이 펼치기에 더 적격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정말 배신자라면 용서함으로써 상생의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과 여당 쪽도 형편은 비슷하다. 국무총리 임명은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하다. 비록 여당 스스로 과반수 의석을 쥐고 있지만 그래도 야당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도 거부하기로 일관하는 야당만 탓하면서 밀어붙이기식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다. 국무총리 문제도 이렇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장관 자리를 두고 여당내의 차기 대선 주자들끼리 다투고만 있는 모습은 상생 정치와 거리가 한참 멀다.

사실 그동안 아무도 여야 의원들을 죽이려든 사람은 없었다. 오직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려 들었을 뿐이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밖으로는 상생하자고 떠든다. 그들이 상생하자는 것은 나만 이기겠다는 말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여야는 지금 죽고 사는 데 신경쓸 일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이 자기 직분인지 다시 정신부터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정작 목표가 돼야 할 것은 상생(相生)이 아니라 상생(上生)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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