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의 동양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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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수필가)

“사관학교 외에 네가 갈 수 있는 학교가 있느냐? 군벌의 장군이 될 네가 책만 가지고 배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왕후는 아들이 15세가 되자 다닐 학교에 대해서 말했다.

“농사짓는 법과 농업에 관해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들었어요.”

왕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갑자기 거친 말투로 소리 질렀다. “그런 학교가 있다면 그건 정말 한심한 짓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 씨뿌리고 거두는 것, 또 밭갈이도 할 줄 모른단 말이냐? 너의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대로 농사는 배울 필요도 없고, 이웃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된다.”

아들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큰 소리를 치면 시무룩해졌다. 그는 이상할 만큼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사관학교에 가겠습니다.” 이 참을성 있고 온순한 태도가 아직도 왕후의 마음에 거슬렸다.

나는 최근 푸른 눈의 동양인 펄 S. 벅이 쓴 ‘대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보통 처음 펴낸 ‘대지’만을 생각하지만, 후속작품인 ‘아들들’과 ‘분열된 일가’ 3편을 패키지로 함께 읽어야 ‘대지’를 읽었다고 할 수 있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작품이다.

펄 S. 벅은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생후 3개월 만에 중국에 건너왔고, 17세까지 남빛 중국옷을 입고 중국에서 공부하며 살았다. 중국이 현실이었고 미국은 바다 건너, 꿈의 나라였다. 당연히 중국어가 모국어이고 영어가 외국어였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중국 농민들의 놀라운 힘, 선량하고 익살스러우며 민첩하고 슬기로운 기질, 냉소와 소박성, 타고난 재치, 자연스러운 생활습성을 잘 그려냈다. ‘군벌의 압제에 시달리면서도 대지를 믿고 사는 농민들의 모습을,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녀의 의도였다. 할아버지 왕룽(王龍), 셋째 아들 왕후, 손자 왕위안의 3대 이야기다.

사관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군벌대장 아버지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어, 자퇴하고 미국에 6년간 유학한다. 전공은 농업이다. 결국 할아버지의 토막집으로 귀향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비옥한 땅의 가치, 근면한 노동, 검소함과 책임감이야말로 궁극적 진리인 것이다.

그녀의 한국 사랑은 극진했다. 5차례나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한미 혼혈아들의 생활과 교육을 위해 펄벅재단을 세우고 꾸준히 지원했다. 병약한 몸으로 마지막 방문을 했을 때는 1000명의 고아를 일일이 만나 사랑과 용기를 쏟아 부었다.

‘동양인은 가족단위이며, 가족 모두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떤 개인도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강조는 동양인이 서양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이 그녀의 일관된 믿음이었다. 왕위안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았지만, 결국 배운 것은 농업이었고, 돌아온 곳은 대지였다.

요즘 우리는 혼란스러운 가치와 불안한 경쟁 속에 헤매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한 세기 전, 한 동양 여인의 푸른 눈 속에 자유를 넘어 행복의 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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