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이후의 정치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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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





하한 정국을 들끓게 했던 인사청문회가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와 신재민 문화관광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의 자진 사퇴로 막을 내렸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역대 정권에서 보여 주었던 것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국무총리 내정자가 국회 인준 표결을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내정자가 낙마했지만 이들은 국회 표결에서 인준을 받지 못했다. 김 내정자가 사퇴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을 간다”라는 문구는 이번 사퇴가 자신의 의지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음을 추론케 한다. 그만큼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절박함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김태호 총리 내정자 사퇴 압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야당이 아니라 여권 내 친이 주류 소장파라는 것이 특이하다. 과거에는 인사 내정자가 문제가 있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여권 주류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주류가 청와대에 일종의 항명(?)을 한 것이다. 이것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면서 나타난 ‘여진 현상’이다. 이번 사퇴 압력에 앞장섰던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대부분이 수도권 출신이라는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만약 대통령이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임명을 밀어붙일 경우, 차기 총선에서 자신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셋째, 인사 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MB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인 ‘친서민과 공정 사회’에 부합하지 않아서 낙마한 점이다. 이는 향후 정치권에 ‘도덕성 경쟁’이라는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도덕성 경쟁은 당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 여부로 불똥이 튈지 모른다.

야당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지난 7·28 재보선 패배 이후 잃어버렸던 정권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민주당은 김태호 내정자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해 항소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람을 공직 후보자로 공천해서 당선시키는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도덕성 검증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고위 공직자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강조한다면 그 잣대를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청문회 전투 승리에 도취되어 우쭐거리지 말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의원과 공직자에 대해서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 여당을 향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라”라고 주문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을 것이다.

여하튼 이번 인사청문회로 MB 정부는 집권 후반기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됐다. 향후 6개월 이후 정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정치 선행지수’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수치는 빠르게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그 이유는 후반기 MB 정부의 통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당장 여권 내 유력 대권 후보들의 정치 행보가 강화될 것이고, 한나라당 주류 친이계 소장파의 파편화가 심화될 것이며, 야당 내 차기 대권 후보들의 선명성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산사태처럼 다가올지도 모를 레임덕을 막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그 핵심에 대통령은 무엇을 얻을 것인지보다는 무엇을 버릴지 고민하는 ‘버림의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또한 전략적으로 정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 실험을 단행하기보다는 순리에 따르는 ‘정도의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회동해서 약속한 ‘한나라당 정권 재창출 노력’도 이런 신념과 기조 속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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