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伐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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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달리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그래서일까, 한가위를 앞두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달빛이 반가움을 더해준다. 열대야가 물러간 자리에 조석으로 찾아드는 산들바람은 결실의 계절이 도래함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란 어느 모로 보나 오묘하고 신비롭기 그지없는 것.

 

이즈음 되풀이되는 연례행사가 있다. 이름 하여 ‘벌초’다. ‘금초’(禁草) 혹은 ‘사초’(莎草)라는 말과도 관련 있는데, 특히 우리 고장 제주에서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후손의 중대한 의무사항 중 하나이다. 추석을 앞두고 조상의 묘를 찾아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어내고, 봉분을 깔끔하게 손질한다. 행여 봉분주위에 ‘산담’이 둘려 있다면, 그 주변까지 산뜻하게 정리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아직 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산야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벌초를 마친 성묘객들의 발길은 가볍다. 잠시나마 자손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는 뿌듯함에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벌초 대행업체’들이 성수기를 맞이함을 목도하면서 씁쓸한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하기야 아예 성묘를 하지 않고 묵혀 두는 것보다 대행업체의 손에라도 맡겨 손질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반추해 보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꽤 먼 길을 걸어서 성묘하러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집안 어른들께서 벌초하는 사이 방아깨비를 잡고 이름 모를 열매를 따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자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벌초 행위는 단순히 풀을 베는 일에 그치지 않는 다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한편, 조상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뿌리와 근본을 깨닫게 하는 산교육의 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여 장묘 문화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조상을 섬기는 근본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쪼록 온 가족이 모여 직접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면서 삶의 가치를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금화처럼 풍성한 한가위 보름달을 그리면서….

 

<강종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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