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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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면 희다 하고 희면 검다 하네

검거나 희거나 옳다 할 이 전혀 없다

차라리 귀 막고 눈 감아 듣지도 보지도 말리라.”

조선 경종 때 김수장이 왕위 계승문제를 놓고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이 벌인 당쟁을 개탄하며 읊은 글이다.

관료들이 민심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일삼는 세태를 크게 탄식하는 노래다.

오늘날의 정당정치에 비유될 수 있는 당쟁(黨爭)은 선조 때부터 시작돼 영.정조 때 피크를 이룬 조선 중.후반기의 정치패턴이라고 하겠다.

계유정란으로 권력을 잡은 세조는 기존의 권력층을 견제하기 위해 지방의 젊고 야심 찬 사림파를 정계로 끌어들였는데 이들은 처음에 재야 학자로 있다가 정치집단으로 성장했고 기존 관료조직인 훈구파를 공격해 승리함으로써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더이상 대적할 세력이 없어지자 점차 내부적으로 권력 다툼을 벌이며 분열되기 시작했다.

선조 8년에 ‘이조전랑’이라는 관직을 놓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충돌했고 사림파는 집이 성 동쪽에 있는 김효원을 따르는 동인과 성 서쪽에 있는 심의겸을 따르는 서인으로 갈라져 당쟁을 벌이게 된다. 이어 동인은 남인과 북인,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각각 나뉘어 이른바 ‘4색 당파’라 불리며 치열한 당파 싸움을 벌였다.

흔히들 조선의 멸망이 당파 싸움 때문이라고들 얘기한다. 기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일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몰아갔다는 지적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민주의 사학자들이 조선 독립의 희망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정치적 전통을 왜곡시켜 당파 싸움의 폐단을 실제보다 과장함으로써 조선 민족의 역량을 부정하도록 만들었다는 게다.

실제로 당파 싸움이 극에 달했던 조선 후기 영.정조 때는 조선이 가장 영화로운 시기였다는 점에서 당쟁이 꼭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당쟁의 근본을 민심(民心)에 두었느냐 아니면 당리당략과 권력에 두었느냐 하는 차이인 것 같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민심을 저버린 당쟁인 듯싶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여야가 ‘국가 정체성’ 문제를 놓고 사활을 건 전면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전면전이 민생안정과 무너진 경제 회복에 얼마만큼 보탬이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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