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을 잡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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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는 집단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 두레와 품앗이는 농사를 짓는 데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남의 집 노동을 대신해 주고도 그때그때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품앗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전통이다.

따라서 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는 공동체 정신을 고양시키는 각종 문화가 발전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은 후까지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살아가는 데 수반되는 일련의 당연한 코스(백일, 돌, 결혼, 이사, 환갑, 칠순 및 제사까지)는 항상 잔치와 연결된다.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심으로써 공동체 정신을 고양시키고 결속을 다진다. 이는 이어지는 집단노동의 원동력이 된다.

한편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은 점차 개인적인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의 전환으로 인하여 노동은 개인화된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은 이를 더욱 가속시킨다. 과거 농경사회에서처럼 일을 잘하건 못하건, 힘이 세건 그렇지 않건 나누어 먹는 미풍양속을 산업사회에서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산업사회는 개인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러한 개인화가 비인간적으로 보이고 미풍양속을 해칠는지 몰라도 지식산업 사회에 있어서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시간 즉 혼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문화는 여전히 과거의 상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공동체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련의 활동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소속된 집단의 연대감은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각종 관혼상제에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는 일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충실히 수행하면 개인적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 추가로 건수(?)만 있으면 모임을 만든다면 이런저런 약속과 연락 등에 매이기 때문에 공동체는 있지만 개인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사회와 맞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다.

또 농경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성취는 큰 의미가 없다. 한 마을에 살면서 누구나 농사를 짓는 마당에 개인적인 성취는 별 의미가 없다. 그렇게 되면 나이가 곧 계급이 된다. 웃어른을 존경하는 풍습은 나이가 많으면 경험이 많고 배울 것이 있다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사회에서는 젊은 사람도 많은 성취를 할 수 있으며 나이순의 계급구조가 통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나이순의 계급구조에 사로잡혀 있다면 새로운 것을 성취할 동기는 부여되지 않는다. 열심히 밥 잘 먹고 오래 사는 것이 출세하는 길인 것이다. 성취의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사회가 발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결과 도덕이 붕괴되는 것 같고 또 미풍양속이 없어지는 것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는 하다. 또 한 개인으로서 누구도 이러한 과거의 중요한 덕목을 일탈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 변화하는 사회에 잘 들어맞는 경쟁력 있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문화를 필요로 한다.

관혼상제에 얼굴을 번번히 비치지 않아도 축전이나 온라인으로 부조를 하는 등 새로운 문화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청첩장에는 계좌번호가 찍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윗분을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전화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 보편화되듯이 이제는 이메일(E-mail)로 인사를 드리는 것도 용납될 것이다. 사회가 달라지면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문화는 사회의 진도를 늦게 따라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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