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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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좋아하는 한치를 장만하기 위해 냉장고 점검에 들어갔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냉동고에는 무엇인가 들어있는 봉지들이 주저리주저리 쌓여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참에 TV에서 냉장고 정리하는 법을 알려준 대로는 안 되지만 정리를 해야만 한치 자리가 생길 것 같다.

 

봉지들을 하나하나 꺼내 열어보니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는 떡이 태반이다. 떡을 좋아해 받아오기는 했지만 정작 냉장고에 들어가면 좀처럼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꽁꽁 언 채 시간만 보내는 신세가 된다. 시댁 제사가 지난지가 꽤 됐는데 제사 때 받아 온 떡도 그대로다.

 

시댁은 식구가 많아 떡 반을 나누기가 번거롭고 또 양도 만만찮은 데도 제사가 끝나면 쇼핑백이 줄을 지어 마루에 나와 있다. 자식들이 가면서 가지고 가라고 어머니께서 챙겨 놓은 떡 반이다. 혹시라도 잊어버리고 갈라치면 큰일이 난 것처럼 큰 소리로 불러 세우시고는 챙겨주신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도 막무가내다. 제사음식은 고루 나누어 먹어야 된다는 생각도 그렇지만 무언가 손에 들려주어야만 마음이 편하신가 보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는 날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꼭 같이 접시에 장만한 음식을 고루 담아 반을 태우시고는 반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없는지 이리저리 살피시고 받지 못한 일가친척들에게는 집으로 보내주셨던 그 마음이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반으로 주신 떡을 맛있게 식구들에게 먹일 궁리를 하면서 백설기는 쉰다리로 만들어 먹기로 하고 따로 분류했다. 얼마 전 추석 때 받아 온 송편을 보면서 하나라도 더 싸주고 싶어 집어넣고 또 집어넣는 어머니에게 됐다고 소리치며 한 소리했던 것이 생각났다.

 

올해는 날씨가 너무 더워 음식하는 일이 힘들었을 텐데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기쁨으로 손수 송편을 빚으면서 땀범벅이 되셨을 어머니의 얼굴이 다가왔다. 먹고 싶은 것도 자식 입에 들어가기 위해 한 입 물지 못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자식에게 줄 보따리만을 싸고 계시는 어머니 모습과 겹쳐진 송편 봉지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밑바닥 깊은 곳에 들어 있는 봉지 하나를 꺼내보니 생선이었다. 군대 간 아들이 휴가 오면 먹인다고 장만해둔 생선 봉지인 것이다. 잘도 들어가 차지한 봉지들을 꺼내면서 이유 없이 들어가 있는 봉지는 없는 듯하다. 꽁꽁 얼어 있는 봉지들에게 사연을 담아둔 것조차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이름표를 달아주게 됐다.

 

냉장고 정리로 마음마저 가볍다. 마치 마음의 복잡한 실타래를 푼 것처럼. 나도 비워내야 할 때 비우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던 것들을 이제 내려놓고 비워내야 될 것 같다. 그래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앉을 자리가 생길 테니까.

 

<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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