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를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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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제주외고 교장
“선생님! 저게 뭐예요? 불이 날라 다녀요.”

“아니, 저것은! 반딧불이가 아냐? 가까이 가서 보자.” 옆에 있는 학생과 함께 뛰어 갔다. 손으로 낙아 채려는 순간 가로등이 켜지고, 나르는 작은 불은 거대한 불빛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참으로 섭섭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개똥벌레와의 조우. 몇십년만이다. 잡아 자세히 살펴보고, 그 오묘한 향기도 맡아 보려고 했는데. 너무 아쉬웠다. 새삼 이 곳에 아직 개똥벌레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학교는 중산간에 있고 또 아직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땐 제주시 도심 어디서나, 여름철이면 때지어 날아다니는 개똥벌레를 볼 수 있었다. 놀이와 소일거리가 없었던 저녁엔, 으례 개똥벌레를 쫒아 다니며 초저녁을 보내곤 했다. 잡는 방법은 단순했다. 손바닥으로 치면 떨어진다. 그 다음 주워 모으면 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호박꽃이다. 잡은 벌레들을 호박꽃 속에 여러 마리 집어넣으면 금새 호롱불이 된다. 깜깜한 세상에 서늘한 불과 오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래전에 이미 가로등, 자동차, 거대 건물의 찬란한 조명으로 개똥벌레가 자신을 드러내 밤의 지배자로 살아가기엔 틀려버린 세상이 되었다.
요즘은 천연기념물 지역인 전북 무주군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반딧불이 축제를 하고 있다. 실제 반딧불이를 본 사람들은 어른이건 아이건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렇게 영롱한 빛이 조그만 곤충의 몸에서 나오다니!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불을 켤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이라 반딧불이의 불빛과 눈빛을 이용해 책을 읽었다는 중국의 차윤(車胤)과 손강(孫康)의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다. 그런데 진짜 반딧불이의 불빛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실제로 1마리에 3럭스 정도이고, 일반적으로 사무실의 밝기가 평균 500럭스이니 반딧불이 200마리가 있으면 신문을 포함한 일반 책들은 모두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짝짓기를 위한 의사소통수단이다. 수컷이 강한 불빛을 내뿜기 시작하면 암컷도 발광의 세기가 강해지고 짝짓기에 들어가면 빛의 세기가 약해진다. 신형원의 노래에 개똥 무덤을 찾아 잠든다고 하는 가사처럼, 그 이름에는 예전에 개똥만큼이나 흔하던 벌레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 줄기 빛을 사용하는 반딧불이에게 도시의 광해(光害)가 심각한 교란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자난 여름 그들은 어디선가 분주히 윤무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영접치 못한 것은 큰 빛만 따라다니느라 그 따스한 불 군락을 지나쳤음에 틀림없다. 내년엔 어느 초여름날 한두 시간만이라도 우리 섬이 모두 불을 끄고 반딧불이를 찾아 떠나면 어떨까? 그리고 그들의 생명 창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원시의 밤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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