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이명(耳鳴)과 코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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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계간문예‘다층’주간/시인>

 

연암 박지원의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槁自序)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한 아이가 놀다가 갑자기 ‘앵∼’하고 귀가 울자 ‘와!’하고 좋아하면서 가만히 옆의 동무에게 말했다. “얘, 이 소리 좀 들어봐! 내 귀에서 아주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걸, 꼭 피리를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생황을 부는 것 같기도 한데 소리가 동글동글한 게 꼭 별 같아.”


그러자 그 동무는 자기 귀를 갖다 대 보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답답해 그만 소리를 지르며 남이 알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다.


언젠가 어떤 시골 사람과 한 방에 잤는데 그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았다.
그 소리는 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휘파람을 부는 것 같기도 하고,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숨 쉬는 것 같기도 하고, ‘푸우∼’ 하고 입으로 불을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보글보글 솥이 끓는 것 같기도 하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 같고, 숨을 내 쉴 땐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적 없소이다!”


언젠가 물 건너온 한 시인 부부와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제주를 둘러보고 나서 공항으로 가기 전에 연락을 한 것이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그들은 이미 수 십 차례 제주 여행을 한 적이 있는 터라, 시간도 모자라지만, 특별하게 안내할 마땅한 곳이 생각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제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라봉과 별도봉으로 안내를 했다.


별도봉의 장수산책로(이름은 참 멋이 없지만)를 따라 40여 분 별도봉을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 십 차례 제주를 찾아와도 그 누구도 이곳을 안내해 준 적이 없다고. 그리고 ‘로렐라이 언덕’은 보잘 것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노래 한 곡이 달려 있음으로 인해 수 십만 관광객이 찾는다며, 로렐라이에 비하면 백 배, 천 배 훌륭한 경관이라며 침이 마르게 감탄을 했다.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바다’가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일 뿐이다. 하지만 바다와는 상관없이 살아온 관광객들에게 제주바다의 신비한 빛깔은 그들의 넋을 송두리째 빼놓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코골이를 한 사람의 생각과 같다. 아무리 기둥이 흔들리게 코를 골았을망정 깨고 나면 자신은 절대로 코를 곤 적이 없다고 하는 생각.

반면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도시적 관광지들은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낯설고 신비하고 대단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전국, 아니 세계 어느 곳을 가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볼거리에 불과하다. 이명을 앓는 사람의 생각과 같다.

난 너무 아름답지만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어쩌면 제주 문화의 현실도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제주 도민들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워 하는 것들이 타지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 없이 받아들여진다든가, 제주 도민의 입장에서는 별스러울 것 없는데, 그들에게는 유난한 관심과 경탄의 대상이 되는 것들 말이다.


이러한 이명과 코골이를 먼저 진단하는 것에서부터 제주 문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왜 제주를 찾아오는지, 제주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싶어 하는지,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자랑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의 눈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시대 ‘우리 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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