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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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열 아라중학교 교사/시인>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러이 연다’ 김현승 시인의 ‘책’이란 시의 일부분이다.

가을이 깊다. 낙엽을 보면 스산한 기운이 가슴으로 내려온다. 땅으로 떨어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는 건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일인가 보다. 이럴 때면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에 마음이 열린다.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줄 한 권의 책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기 위해선 많은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것들의 유혹이 우리 주변에 즐비하다. 텔레비전에선 현란한 춤과 노래가 나오고 중독처럼 끌어당기는 드라마의 유혹과 인터넷 게임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역 별로 도서관들이 들어서고 책과 관련한 활동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꾸준히 전개되는 책읽기 운동 중 하나가 바로 ‘책들의 가을 소풍’인 ‘제주책축제’다. 이 행사는 10월 셋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신산공원에서 열렸는데 올해로 네 번째 나들이를 했다.

10월 화창한 가을 날, 책축제의 주제는 ‘책을 가까이, 더 가까이’였다.

전시마당, 공연마당, 체험마당, 책 교환마당으로 나뉘어 열린 이번 축제에 이틀 내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모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에서 제주의 긍정적 미래를 읽었다. 도시락을 싸고 공원을 찾은 가족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자연스럽게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첫날 개막식에 출연한 중학교 3학년 한 남학생은 자신이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엄마가 읽어주셨던 동화책, 머리맡에 늘 놓여 있던 책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주었다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책에 얽힌 일화가 생각난다. 시인은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의 시 ‘책 미치광이’를 보면, 일본에 살았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치바켄 타태야마시 호오죠라는 마을 역전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었는데 그는 학교를 마치면 반드시 그곳엘 갔다. 어느 날, 직원이 목욕하고 오겠다며 도서관을 지켜달라고 서가열쇠를 맡겼다. 사실 그 직원은 시립도서관장이었고 잠시나마 초등 6년생이 시립도서관장 임시대행을 살짝 지냈다고 어린 시절의 회상을 재미있게 쓰고 있다.

책 읽기는 습관이고 분위기다. 집에서 책을 보든, 도서관을 찾아서 책을 읽든,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언젠가 도서관엘 갔다가 문 닫는 시간에 계단을 걸어 나온 적이 있다. 꽃은 보이지 않는데, 걸어 나오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마다 수선화 향기로 가득했다.

살다보면, 어느 날 문득 외로워지거나 슬퍼질 때가 있다. 그 때 책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책을 통해 외로움도 슬픔도 함께 치유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상처를 치유했다. 새살 돋아날 때의 간지럼은 나를 행복으로 이끌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때론, 책을 읽는다고 바로 행복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그래서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게 해준다. 스산한 가을 날, 한 잔 술을 권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영혼을 채워줄 좋은 책 한 권 서로 권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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