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 제주의 경쟁력 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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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일류로 가는 길(1)

<채바다, 한국하멜기념사업회 회장, 고대해양탐험가>

하멜은 1653년 8월16일 새벽 23살 청년으로써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 중에 태풍을 만나 제주에서 난파되어 13년 동안 억류되었다. 그는 일행들과 천신만고 끝에 여수에서 일본으로 탈출하여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이 배에는 하멜을 비롯해서 64명 선원이 타고 있었다. 난파되면서 28명이 숨지고 36명이 겨우 살아남은 것이다.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풍습.제도,문물을 그가 쓴 “표류기”를 통하여 이웃 나라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잇따라 번역 출판되어 한국을 서양에 최초로 알린 청년이다. 이 하멜표류기는 제주를 첫 무대로 출발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 표류기는 세계적인 고전(古典) 가운데 하나다.

 

하멜은 유럽에 한류 바람을 일으킨 대표적인 청년이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럽고 우정 넘치는 고마운 친구이다. 그런데 이들의 난파된 해안이 산방산 용머리 해안으로 소개하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과제로 남는다.

 

난파 표착 해안에 대한 정확한 위치규명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아직도 바로 잡으려는 노력들이 없어서 매우 안타갑기만 하다. 국제 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도로써는 서둘러 역사의 현장을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역사의 현장은 제주의 위상과 이미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판단된다.

 

네덜란드는 일본의 근대화에 큰 견인차 역할을 한 국가이다. 일본은 이를 상징이라도 하듯 나가사키에 네덜란드를 체험할 수 있는 하우스텐보스를 만들어 놓았다.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맞아 이 나라에 대한 폭넓은 교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관문으로써 제주를 유럽에 알리는 중요한 거점 도시이며 교두보이다. 이러한 일들은 제주가 일류로 가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하멜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하멜과 함께 생사를 나누웠던 선장 에그베르츠(Egbertz)를 위시해서 5~6명의 선원들이 난파된 제주 해안에 묻혀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고혼들을 달래주는 일들도 제주가 일류로 가는 첫 걸음이다.이들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나가야 함은 물론 이들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세워 문화시민의 위상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들의 표착해안을 백방으로 찾아 나선바 있다. 이런 결과 대정읍 신도2리 해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제주도사 연구 제7집1998.12월간. 제5권제주문화원제5권. 1999년12월 발행에서 밝힌바 있다). 이런 사실들을 당시 신문과 방송 기자들을 초청하여 설명회도 가졌다. 벌써 10여년이 되었다.

 

하멜과 인연이 된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Gold Age)를 열어가는 절정기 이다. 네덜란드 국민들의 도전과 성장의 중심에 하멜과 같은 젊은이들이 주역이 되었다. 당시 동료들 가운데는 10대 소년들도 4~5명이 선원으로 함께 승선하고 있었다. 청년 하멜은 70고령의 이원진 제주 목사와 만난 이야기를 표류기에 담고 있다. 그가 제주목사를 만난 감동적인 기록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들은 제주와 조선에서 겪었던 온갖 시련과 고통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정신들은 오늘날 네덜란드 국민성에서도 찾게 된다. 긍정적인 생각은 네덜란드를 일류로 가는데 큰 초석이 되어 주고 있다는 교훈을 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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