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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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남에게 부탁할 일이 없이 살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탁하기도 하고 부탁받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삶이고 보면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현명하게 대처해나가는 것도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누가 되지 않으면서도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도 필요한 지혜이겠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절의 화법도 부탁의 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거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상대방이 간절하게 부탁해왔을 때 거절하고 나면 뭔가 찜찜하고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그리곤 후회한다. 내가 조금만 힘들어도 노력하면 될 일인데... 반대로 마지못해 허락해 놓고는 약속을 지키려 끙끙대며 그 때 거절했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걸 하고 후회할 때도 많다.

“차 한 잔 하실까요?”와 “오늘 바쁘시지 않으면 차 한 잔 할까요?”의 차이만큼 “오늘 바빠서 안 돼요”와 “그러고 싶은데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안 되겠네요. 시간 되면 제가 연락드릴게요”와는 차이가 크다.

거절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분명하고 단호한 거절, 배려하는 완곡한 거절, 아예 무응답. 그 중에 상대방에게 가장 무성의하고 모욕적인 것은 무응답이다. 무응답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에 관련한 청탁이라면 분명하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오히려 모호한 긍정으로 뒤바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겪게 되는 부탁들은 충분히 상대방을 배려하여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불쑥 거절해놓고 속상해하지 말고 한 번만 뜸 들이면 현명하게 거절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의 거절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대답을 긍정인지 부정인지 잘 몰라 아전인수 격으로 긍정으로 생각해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상대방을 배려해서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참 좋은데요, 나중에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하면 우리는 ‘참 좋은데요.’ 까지만 듣고 긍정으로 받아들여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멀구슬나무 겨울을 참고 견디기 위해 잎을 다 떨군 채 내공을 쌓고 있다.

이 겨울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내 마음도 아프지 않는 거절의 미학을 배워야겠다.

<고성기, 시인, 제주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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