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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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시조시인)
15년 전, 그러니까 1995년 여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폼페이로 갔다.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서양인들이 30여분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입구 쪽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만돌린을 들고 있었다. 집시였다. 어느새 우리가 앉은 테이블까지 서서히 다가왔다. 이탈리아 민요 ‘산타루치아’의 경쾌한 음이 흐른다. 바로 그 때였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이 선생이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음악을 전공한 오 선생도 다가와 같이 부른다. 한 곡이 끝나자 항구도시 소렌토의 사랑과 낭만을 담은 칸소네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른다.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앉아 있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참으로 황홀한 순간이었다.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일이다. 지인들과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눌 때이다. 김 사장께서 일어서더니 “저는 시 낭독은 잘 못하지만 한 편 낭송해보겠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잔잔한 박수가 계속되었다.
풍류(風流)적인 술자리였다.

풍류란, 풍치 있고 우아한 생활이나 태도를 말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최치원의 난랑비서(鸞朗碑序)에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현묘의 도란 3교(유․불․선)을 포함하여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 하였다. 접화군생이란 군중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도 있지만,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느낄 수 있듯이 모든 만물이 꽃을 피우려면 눈보라 같은 온갖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로 보고 싶다. 연말 송년모임이 많은 때다. 되도록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왜냐면 우리의 각박한 삶도 한결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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