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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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저청중 교장.동화작가
벌써 세밑이다. 물끄러미 한 장 남은 달력을 들여다본다. 되돌아보지만 아쉬움만 남는 건 왠일일까? 나와 내 가족,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하지 못한 회한(悔恨)과 아쉬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들의 가슴을 유난히 아프게 했던 한 해. 인륜을 저버린 사건 때문에 더 가슴을 아리게 하는 2010년 경인년(庚寅年)이 가고 있다.

게임을 그만하라고 나무라는 어머니를 살해한 두 세 건의 패륜과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며 3개월 된 젖먹이를 굶겨 죽이는 젊은 엄마도 있었다. 바로 엊그제는 여자친구를 못 사귀게 한다고 친조부모를 흉기로 살해한 손자도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다. 한 해를 보내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러한 해괴한 사건들의 근저에는 물질만능시대를 살아가는 군상들의 아노미(anomie) 현상과도 무관치 않으며 영상매체의 선정성과 폭력성, 인명을 경시하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 못하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느낌이다. 섬뜩하다. 참으로 동물만도 못한 게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최근에 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 인간들보다 미물인 동물들이 훨씬 낫다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적이 있다. 햇볕 좋은 지난 달 하순이었다. 습기를 찾아 우리 학교 우천도로를 건너던 민달팽이 한 마리가 죽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지만 복족류(腹足類)에 속하는 이 녀석은 내가 어릴 적부터 무척 징그럽게 여기던 동물이었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롭고 징그러운 동물, 우리 학생들도 징그럽게 생각됐는지 쓸어버리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다시 한 마리가 그 위에 포개져 있었다. 또 로드킬(road-kill)을 당했구나 하며 살펴봤는데 그 녀석은 죽은 게 아니었다. 그 위에 포개져 움직이지 않을 뿐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 한 참을 지켜보았다. 더듬이를 접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속으로 처절한 슬픔을 삼키며 속울음을 우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난 그 광경을 다시 목격했다. 이건 필시 죽은 그 달팽이의 가족임이 분명하다. 부부인지 형제자매간인지 가족관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죽은 이를 위해 2,3일에 한번씩 찾아와 속울음을 울고 가는 그 처절한 사랑을 나는 확인했다.

눈물겹다. 민달팽이의 사랑과 죽음이 정말 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과연 누가 이 미물을 인간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는가?
패륜범죄와 인명경시풍조로 물든 경인년 가는 해에 인간들은 동물들의 이 처절한 사랑을 배웠으면 한다. 그 사랑이 신묘년(辛卯年) 새해에는 들불처럼 온누리에 번져 매마른 범인(凡人)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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