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라(國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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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세화고등학교 교장/시인>

오늘은 2010년을 깜깜한 과거로 묻는다.

그 속에서도 빛나는 별들이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의 영혼들이다.

연평도 피폭사건에 전사한 서정우 하사.

휴가 신고를 마치고 선창가에 나와 배를 타려 할 때, 북한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그는 배를 타지 않고 도로 부대로 뛰어가 임무수행 중 전사했다고 보도되었다.

애통하기가 그지없다.

국방을 위한 그의 숭고한 정신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죽음은 교과서에 실리어 살아있게 해야 할 것이다.

국방의 실제적 표상(表象)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해야 할 것이다.

‘나와 나라’의 관계를 ‘나라 국(國)’의 한자 상형에서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몸(口)은 모아 놓은 총체를 뜻한다. 그 안의 입구(口)는 인구, 즉 국민을 뜻하며, 주살 익과 창(戈)은 무기의 총체이다. 입구(口) 아래의 ‘_’는 사람들이 밟고 있는 땅, 즉 영토를 의미한다. 즉, 나라(國)은 ‘국민들이 무기(戈)를 들고, 자신과 영토를 지키는 총체적 몸’인 것이다.

그것을 대행해 줄 어느 누구도 없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말은 곧 국민이 나가 싸운다는 의미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 직전에, 조선의 조정은 소위 동인과 서인으로 의견이 서로 달랐다.

동인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위인이 되지 못한다고 했고, 서인 황윤길은 그가 충분히 전쟁을 일으킬 만한 탐욕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조선은 무사하기만을 바랐고,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결국 그것으로 천추의 한이 되는 임진왜란을 겪게 된 것이다.

지금과 임진왜란 직전과 뭣이 다를까?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즉,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다’는 휘호는 전투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만심(慢心)은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必生)’으로 해석이 될 것이다.

‘북쪽은 언제든지 도발 할 것이고, 죽더라도 내 자신부터 나가 싸운다’라고 각오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 아닐까.

주의(主義;ideology)는 ‘두 사람 이상이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아 갈 수 있을까하는 철학(哲學)이다.

같이 살아가는 철학이라며, 되레 무기를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고 있다.

그 이념의 합리성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을 죽이는 그 철학을 그들은 주체사상이라고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전투는 적을 죽이며 그 땅을 빼앗는 행위(combat)이지만, 무기를 든 사람(combatant)은 들고 있지 않은 사람(non-combatant)을 죽이지 않게 되어 있다.

북한은 6·25 때에도 남쪽으로 오는 피난민 대열에 끼어, 이들을 총알받이 방패로 앞세워 전투를 했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이들은 민간인을 구분할 리가 없다.

미국 국가(國歌)의 매 절 끝 부분. ‘포탄이 공중에서 터지는 전투로 밤이 샌 새벽, 성조기는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자유인의 땅과 용자(勇者)의 가정 위에서(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2010년 세밑에, 그 별들의 외침이 들린다. 나는 나라이며, 나라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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