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유배문화 제주의 소중한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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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추사에게 길을 묻다
▲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이자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제주에 찾아와 유배 중인 추사를 그린 해천일립상(海天一笠像). 원래 이 그림은 송나라 소동파가 혜주에 유배당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이공린이 그린 ‘동파입극도’에서 소재를 빌려온 것이다. ‘동파입극도’는 소동파가 나막신을 신은 평복 차림의 처연한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소치가 이것에 착안, 바닷가 대정마을에서 귀양살이하는 추사의 모습을 소동파에 빗대어 그린 초상화다. 소치는 1856년 스승인 추사가 세상을 뜨자 고향 진도로 낙향해 운림산방을 짓고 화업에 전념했다.

▲연재에 앞서=새해 첫날에 “무슨 유배(流配)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죄인을 먼 지역에 가두고 평생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 유배다. 덕담을 나눠도 시원치 않은데 형벌을 운운하는 것이 분명 마뜩잖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본 연재를 권하고 싶다. 유배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거기에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무엇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인생의 격랑을 헤치고 나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유배 기사가 5860여건 나온다. 이 가운데 빈도수가 많은 유배지가 40여개이고 5위까지는 모두 섬이다. 1위가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가 이렇게 각광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었기 때문이다.

 

이 섬과 인연을 맺었던 유배인은 대략 200여 명 된다. 신분도 왕족과 문무양반부터 잡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식인 4000여 명 가운데 유배와 관련된 사람은 대략 700여 명이며 그 중 50여명이 제주도에 왔었다.

 

친숙한 사람으로 제주오현인 김정, 정온, 송시열 등 이외에 광해군, 김정희, 최익현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단연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일 것이다.

 

이런 까닭에 2010년 지식경제부 사업으로 선정된 ‘제주유배문화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사업’의 1차년도 과제로 필자는 추사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그래서 본 연재도 추사의 이야기부터 먼저 하는 것이다.

 

추사를 알리는데 큰 몫을 한 사람은 유홍준이다. 그의 ‘완당평전’(2002)만큼 관심을 불러일으킨 관련 서적도 없다. 그러나 ‘완당평전’은 물론 다른 저작들도 추사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제주유배생활을 제대로 다루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이런 형편이니 “추사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제주유배생활을 제대로 이야기해 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이를 위해 추사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무슨 연유로 유배되었을까? 그리고 그는 제주도에서 대체 무엇을 했을까? 라는 질문에 근거해 연재를 해보려 한다.

 

▲제주유배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필자는 2010년 지경부에 ‘제주유배문화의 녹색관광자원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사업’을 신청해, 최종 선정됐다.

 

이로써 1차년도에는 추사의 제주유배생활을 다양하게 콘텐츠화 할 것이며, 그 과제의 하나로 ‘추사의 유배길’도 조성 중이다. 유배길은 제주역사문화에 기초한 흥미로운 도보체험상품이 될 것이다.

 

최근, 유배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전남 신안군이 ‘흑산도유배문화공원사업’을 서두르고, 경남 남해군은 ‘남해유배문학관’을 지난해 11월 개관했다. 외국에서는 나폴레옹의 유배지인 세인트헬레나섬을 독특한 관광지로 개발했고, 중국 역시 소동파의 유배지였던 하이난섬을 그렇게 하고 있다.

 

▲ 추사 적거지 모습.

2004년 남제주군은 ‘제주유배문화관’을 설립하려 했었다. 필자도 참가했지만 시·군이 통합되면서 그 사업은 중단됐다.

 

추사유배지가 국가지정 사적 487호가 되면서 추사관이 새롭게 개관을 한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다. 유배문화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이유는 우선 제주도의 자주적인 문화가 아니라는 회의감 때문이다.

 

그리고 유배 때문에 제주도 이미지가 나쁘게 각인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제주유배인은 제주출신은 아니지만 제주도와 이해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로 넓게 제주인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추사가 9년을, 정난주는 무려 37년을 살았으니 더욱 그렇다. 그들과 제주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낸 문화가 바로 ‘제주유배문화’인 것이다.

 

또한 유배는 가혹한 형벌이라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내용에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유배는 염치와 명분의 상징이었고 자기완성의 공간이었다. 추사 경우만 하더라도 유배가 아니었다면 불멸의 추사체를 완성치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배 때문에 제주도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라는 염려는 기우일 뿐이다.

 

제주유배문화는 분명히 제주도의 또 다른 자산이다. 특히 인문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에 주목하여 지경부도 큰 사업비를 필자에게 지원한 것이며 제주일보 역시 이런 취지에 발맞춰 본 연재를 기획한 것이다.


<필자의 말>
제주유배문화 콘텐츠 개발에 대해 정부가 사업지원을 결정하고, 제주일보가 연재를 기획해 새해 첫날부터 게재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학계 중심의 제주유배문화에 대한 제한적인 관심을 OSMU(One Source Multi Use)마케팅 차원으로 전환, 확대시키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OSMU마케팅이란 말 그대로 하나의 콘텐츠를 영화, 게임, 음반,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 장난감, 출판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판매해 부가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방식이다. 분명히 제주유배문화는 다른 어느 문화원형보다도 OSMU의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 주목해 제주일보는 연재 지면과 횟수를 파격적으로 제공한 것인데 필자는 앞으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연재 제목도 ‘매혹적인 이야기(스토리텔링)’이라고 부쳤던 것이며 이런 까닭에 학계의 글쓰기 방식을 과감하게 탈피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다. <양진건 제주대 교수>

▲ 양진건 교수.
<양진건 교수는>
양진건(梁鎭健)은 1957년생으로 서귀포 남원 출신이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와 사회교육대학원 스토리텔링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현재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R&D센터’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의 저서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문학과지성사·1999), ‘제주유배문학자료집Ⅰ’(제주대출판부·2008)과 관련 논문들은 제주유배문화 콘텐츠 개발사업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녹색제주연구소에서 유배문화해설사를 양성했고, 제주유배인의 독서활동에 관한 논문으로 2003년 제1회 한국교육사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 시집인 ‘귀한 매혹’(문학과지성사·2008)은 2008년 문화관광부 최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블로그(blog.joinsmsn.com/pul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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