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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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겨울나무는 참 앙상하다. 마치 생명조차도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푸른 솔을 가진 소나무와 같이 옷을 벗지 않은 나무마저도 겨울바람에 휘감겨 부러질 듯 버텨내고 있는 모습은 바라봄에도 한기가 전해진다.

며칠 전 한라산의 설경을 보게 되었다. 나뭇가지에 휘어지게 쌓인 눈과 앙상한 가지에 붙어 마치 꽃이 핀 것과 같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광경에 숨소리조차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소나무 가지마다 어떻게 저 무게를 견뎌내고 있을까 싶을 만큼 눈 짐을 지고 있다. 견디지 못하면 부러지겠지. 청청한 푸른 솔을 자랑하며 겨울에도 옷 하나 벗지 않고 고고하게 서 있던 소나무도 눈의 무게만큼은 견뎌내기가 쉽지 않은 듯 가지가 축 처져 있다. 내 눈으로 바라 본 소나무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 생각이 내 생각에 지나지 않았음을 곧 알게 되었다. 겨울 소나무의 잎이 수평이 아니라 땅으로 향해 있다는 설명을 듣고 눈 덮인 소나무를 다시 보니 정말로 솔잎이 땅으로 향해 있고 견뎌내기 힘들면 눈을 땅으로 밀어내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고고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솔잎을 숙여 자신을 지켜내고 있는 소나무다.

잎사귀를 다 떨어뜨리고 맨 몸으로 겨울을 품은 나무는 당초에 소나무 같이 옷을 벗지 않고는 겨울을 안을 수 없기에 모든 것을 벗어 버린 듯하다. 새 봄에 움을 틔우기 위해 몸속에 품고 겨울을 안고 있다.

나무도 오래되면 신목이 된다고 한다. 신령한 영이 세월이 지나면 붙어서 신목인가? 아니면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어 마치 신처럼 되어져서 신목인가?

아마 나무도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오랜 세월동안 견뎌내며 배워지게 되었을 것 같다. 새 순을 내밀어 울창한 숲을 만들어 많은 생명들이 깃들게 했던 풍만함과 아름다운 꽃과 열매로 최고의 시세를 자랑하던 나무도 계절 앞에서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벗어버린다. 세월을 살면서 벗을 때를 놓치면 다음에 더 많은 것을 잃게 됨을 알았던 것일까. 조금만 더 머물러도 좋을 것 같지만 아깝다고 여길 때 미련 없이 떨어져 버리는 꽃잎으로 인해 나무는 열매를 얻게 된다.

겨울나무는 알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릴 것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서있지만 당당하다. 눈의 무게에 찢어질 염려도 없고 휘몰아 파고드는 겨울바람조차도 더 이상 비벼대지 못한다.
겨울나무는 알고 있다.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2011년 새해가 시작되어 1월도 중반을 향하고 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이라지만 온 몸으로 겨울을 안고 봄을 잉태하는 겨울나무처럼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가 새해가 되길 소망해본다.<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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