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피부질환이 유행한다(2)-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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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왕 제주대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

14살 여중생이 두 달 전부터 항문과 성기에 사마귀처럼 크게 돌출된 병변이 생겨 본원에 내원했다. 매독혈청검사를 시행해보니 2기매독이었다. 매독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치료를 개시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별 관심과 반응이 없고 도무지 추가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다. 필자가 직접 전화를 해서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매독으로 인한 무서운 후유증들을 막을 수 있다고 설득해 치료를 종결했다.

대학 입학을 앞둔 19살 여고생이 3개월 동안 항문의 궤양과 양쪽 손발바닥의 둥근 피부발진이 지속돼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낫지 않아 내원했다.

역시 2기매독으로 확진됐고, 매독 치료를 시행해 완치됐다. 하지만 이 환자 역시 치료기간 내내 같이 온 친구와 깔깔 웃고 즐거운 잡담을 나누기만 했지 매독의 위험성에 대한 필자의 설명을 심각하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다. 매독은 치료를 필히 받아야만 하는 심각한 성병이지만 예전처럼 근심에 젖는 환자는 별로 없다. 수명은 연장되고 성문화는 개방됐지만, 이에 상응하는 책임감은 실종됐고 성병에 대한 인지수준도 떨어졌다. 더구나 매독이란 질환이 사라졌던 병이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의사들 중에 매독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최근 매독이 회자된 것은 미국이 1932년부터 40년간 과테말라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페니실린의 치료효과를 연구하고자 매독균을 주입해 생체 실험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전부일 뿐 우리 주변에 매독 환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이는 별로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독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중국 병사를 통해 대유행을 했었다. 이후 광동창, 당창, 매창이란 이름으로 불려졌었다. 국내 매독 감염률은 1977년 2.5%에서 1995년 0.2%로 급감했었으나 2008년 대한피부과학회 보고에 따르면 2002년 3.5%, 2005년 4.3%, 2007년 6.3%로 증가 추세이다. 본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기매독의 경우 2004년까지는 연 3~5명 정도로 소수의 환자만 산발적으로 발생하다가 2005년 18명, 2006년 20명, 2007년 17명, 2009년 18명, 2010년 24명으로, 최근 5년간 해마다 약 20명의 신규환자(합계 120명)가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병이 30, 40대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한다는 특성과 달리 10대 8.3%, 20대 14.2%, 50대 9.2%, 60대 9.2%, 70대 4.2%로 전 연령층에서 골고루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10대는 12.5%, 50대 이상은 33.3%를 차지했다. 성접촉 연령대의 폭이 과거에 비해 넓어졌다는 의미다. 게다가 최근 국내에서도 꾸준히 에이즈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매독 상처를 통해 에이즈가 발생하거나, 에이즈가 발병한 상태에서 면역이 저하돼 매독에 2차적으로 감염되는 ‘동반감염’의 위험성도 한층 높아졌다.

제주도 역시 수도권 지역과 마찬가지로 매독 등 각종 성병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7년째 시행 중인 성매매특별법으로 집창촌은 퇴락했으나 성매매 방식은 더욱 음성화되고 은밀한 형태로 진화됐기 때문이다. 성병의 발병 위험군인 성인 남성뿐 아니라 중·고등학생, 대학생, 미혼여성, 주부, 노인 등 전 연령대가 잠재적으로 매독균에 노출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여성의 매독 감염률이 증가한다면 산모의 감염을 통해 신생아의 선천매독도 늘어날 수 있다.

매독 발생률을 낮추려면 대중매체를 통한 캠페인, 학생 대상의 효과적인 성교육 및 계도활동, 직업여성들에 대한 정기적 매독혈청검사 및 건강교육, 1차 진료기관 의료진에 대한 보건교육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원론적인 말이나 예방이 최선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면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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