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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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 8기' 극복 후 잘 나가는 추어탕식당 운영하는 이옥희씨
▲ 삶의 절망을 극복하고 '7전8기'를 이룬 이옥희씨.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죽고 싶었죠.” 11년 전, 잘 나가던 제과점 사장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추락, 새로 차린 식당에 쓸 시래기를 줍던 그녀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댔다. “어쩌다 저 지경이 됐어?”

 

남편과도 헤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평범한 이웃인 그의 삶은 절망을 극복하고 ‘7전 8기’를 이뤘기에 울림이 크다.

 

그녀는 제주시 이도2동 제주민속관광타운 인근에서 추어탕식당을 운영하는 이옥희씨(53)다.

 

아직 젊다면 젊은 이씨지만 삶의 궤적은 산전수전 다 겪고도 남고 경제적으론 남부럽지 않은 여유를 한껏 누려봤다 몸 눕힐 방 한 칸 없는 무일푼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경험했다.

 

원래 경남 거창출신인 이씨는 1978년 홀로 제주에 여행 왔다 제과점 주인이던 남편을 만나 눌러앉았다. 당시 제주 최고 번화가였던 제주시 칠성로에 위치한 제과점은 장사가 잘 됐다.

 

화마란 첫 시련이 닥쳤다. 당시 인근 양장점에서 다리미 과열로 난 화재가 제과점에 옮겨 붙어 홀라당 태웠다. “아무 보상도 못 받았어요. 빚지고 가게를 뜯어고쳐 부지런히 빵을 구웠죠. 얼마 안 지나 빵과 팥빙수가 맛있다는 유명세를 탔어요.”

 

출산 후 몸조리도 제대로 못 한 채 손으로 직접 얼음을 갈아 팥빙수를 만들던 이씨는 여태 후유증을 앓는다고 했다.

 

매일 새벽 4시~밤 12시 밀가루와 팥, 얼음 등과 씨름한 부부는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성실한 부부를 눈여겨본 한 건물주의 제의로 제과점은 중앙로 도로변으로 이전, 더욱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약 10년간 제과점은 부와 명성을 쌓았다. 당시 영부인 이순자 여사가 찹쌀떡을 사먹을 정도였고, 학력고사 등 시험 때마다 합격 기원 떡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런데 남편과 조금씩 어긋났다. “아빠는 가족에 대해 무관심했어요.” 힘들 때면 이씨는 아기 업고 동문재래시장을 방문, 할머니들이 길바닥에서 야채 파는 본능적인 삶을 보며 힘을 얻었다. “난 고생도 아니구나, 자위하며 시련을 극복할 의지를 불태웠죠. 애기엄마가 마수걸이하면 운이 좋다는 노인들의 말에 야채를 사드렸습니다.”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제과점이 번창한다고 믿은 이씨는 모양 등이 잘못된 빵은 시장 할머니나 이웃에게 무료로 전달했다.

 

16년 전께 잘못된 선택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부부는 전 재산을 투자해 유명 남성복 의류점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빚이 나기 시작했고 남편의 증권투자도 큰 손실을 입었다.

 

IMF가 닥치자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었다. “연년생 2남1녀 중 막내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등록금이 없어 자진 입대했어요.” 다시 빵집을 차렸다. 하지만 유명 프랜차이즈제과점이 손님을 모두 빼앗아간 뒤였다. 점점 힘들어졌다. 남편과도 갈등이 깊어져 2001년 갈라섰다.

 

그때 ‘희망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제과점 운영당시 손수 직원에게 음식을 차려줄 때 ‘사장님은 빵집 말고 음식점을 해라’던 말이었다. 달랑 50만원 들고 현재 식당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2남4녀 중 둘째로, 성격이 똑 부러진 이씨가 잘 살 것이라 철썩 같이 믿던 친정어머니도 딸을 돕겠다며 제주에 내려왔다.

 

처음엔 국수, 설렁탕을 팔았지만 잘 안됐다. 어머니가 추어탕을 제안했다. “제주사람은 바다생선만 접하다보니 민물고기는 낯설다는 점에 착안한 발상이었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끓인 추어탕을 맛있게 먹던 기억에 자신감도 붙더라고요.”

 

제주형 추어탕을 향한 연구가 계속됐다. “제주에서 사시사철 나는 푸른 야채로 쌈을 제공했어요. 제주산 무청도 바닷바람 맞아 안 질기고 맛있었죠.” 깔끔하다, 웰빙 식단이다 등 입소문이 번지며 매상이 꾸준히 올랐고, 이제 손님들이 줄을 설만큼 번창했다. 재기의 성공이다.

 

얼마 전 이씨는 남동생 제과점이 파산, 1억원을 변상하는 또 다른 고난도 거뜬히 이겨냈다.

 

오뚝이 인생의 비결은 뭘까. “가족 사랑입니다. 한때 내길 찾아 떠날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니 발이 안 떨어졌어요.” 자식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이씨에게 인생이란 과연 뭘까. “화초 아닐까요. 시들 때도 있고 활짝 필 때도 있는 화초 가꾸는 일과 마찬가지 같아요. 열심히 손 놀린 사람만이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죠.”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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