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전별도, 북경 송별연 참석자 모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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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전별도.

추사가 아버지를 따라 한양을 출발한 것은 순조9년(1809) 10월 28일이었다. 북경까지 대략 50일이 소요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북경 도착은 12월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해 3월 17일에 순조에게 귀국 보고를 했던 것으로 보아 귀국일 50일 정도를 빼면 추사가 북경을 떠난 것은 2월초 쯤 된다.

 

이런 일정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 ‘추사전별도(秋史餞別圖)’가 있는데 또한 추사가 중국에서 만든 북경 인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1810년 2월1일 추사의 송별연이 북경 법원사에서 열렸다. 노령의 옹방강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완원, 조강, 이임송 등이 모여 전별연을 베풀었다. 주학년은 송별연 장면을 즉석에서 스케치하고 거기에 참석자 이름을 모두 기록해 놓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추사전별도’다. 이 그림에 곁들인 제(題)를 보면 다음과 같다.

 

“가경 경오(1810) 2월 조선 김추사선생이 장차 돌아가려고 하면서 책을 내놓고 그림을 요구했다. 바빠서 많이 지을 수는 없으나 경치를 보고 그대로 그려 한 때 멋진 모임을 기록하다. 함께 모인 자는 양주 완운대(揚州 阮芸臺), 백강 이심암(栢江 李心庵), 의황 홍개정(宜黃 洪介亭), 남풍 담퇴재(南豊 譚退齋), 번우 유삼산(番 劉三山), 대흥 옹성원(大興 翁星原), 영산 김근원(英山 金近園), 면주 이묵장(綿州 李墨莊), 양주 주학년(揚州 朱學年)이다. <양진건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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